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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천막과 질퍽한 흙바닥이 나의 주무대… 이번엔 국립극장 마당놀이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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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온다' 꼭두쇠 역 정준태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지난해는 참 정신없었죠? 태풍에, 돼지열병에, 검찰청은 또 왜 그렇게 바쁜지! 이럴 때일수록 건강을 꼭 챙기세요." 구수하면서도 명징한 발음으로 늘어놓는 입담이 관객의 넋을 빼놓는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6일까지 공연 중인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에서 진행자 격인 꼭두쇠 역할을 맡은 배우 정준태(39·사진)다.

조선일보

/장련성 기자


색동옷을 걸치고 나온 그는 번번이 극에 개입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이어준다. 구성진 가락과 해학이 녹은 몸짓을 선보이며 "지혜로움도 어리석음도 별 수 없이 다 인간의 일 아닌가?"라는 '개똥철학'을 설파할 때는 주인공인 난봉꾼 춘풍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된다. 예전 김성녀·윤문식과 함께 '마당놀이 3대 명인'이라 불렸던 김종엽이 맡았던 역할이다. 연출자 손진책은 정준태에 대해 "전통 연희와 가무에 두루 능한 '제2의 김종엽'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국립극장 무대에 처음 선 정준태는 지난 14년 동안 전통 연희의 저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많을 때는 1년에 200회 넘게 했으니….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2000번 이상 공연을 올렸죠." 천막과 공터, 질퍽한 흙바닥, 아파트 놀이터 같은 곳이 그들의 주요 무대였다.

전북 익산 출신인 그는 열세 살 때 사물놀이, 열여섯 살 때 판소리에 입문했고, 탈춤, 남사당놀이, 발탈 등을 배웠다. 중앙대 음악극과에서 지도교수 김성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 2007년 극단 '광대놀음 떼이루'를 만들어 동료 예인들을 규합했다. 줄타기와 사자탈춤을 버무린 아동극 '아기돼지 꼼꼼이'를 제작했을 때 돼지 역을 맡은 여성 단원이 지금은 톱스타가 된 가수 송가인이었다. "그때도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친구였는데 수줍음은 좀 많이 타는 성격이었어요. 이젠 하도 바빠서 전화 통화도 못하지만요, 하하."

극단 일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공들여 준비한 공연이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1회 만에 취소돼, 월세 보증금을 빼 단원들 나눠주고 길거리로 나앉은 일도 있었다. 술취해 욕설을 하거나 돈을 집어던지는 일부 관객의 행태도 감내해야 했다. "비싼 표를 사서 보는 클래식이나 뮤지컬이라면 그런 일이 없었겠지요. 우리가 당당히 우리 것을 하는데 도대체 왜?" 아무리 맥빠지는 일이 많아도 정준태는 "무대만 올라가면 힘을 얻는다"고 했다. "관객들 눈을 바라보며 소통하고 박수와 환호를 맛보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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