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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발자취] 성대모사로 팍팍한 삶 달래준 '원맨쇼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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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코미디언 남보원 별세

역대 대통령 목소리 흉내부터 전투기, 탱크, 뱃고동 소리까지

전쟁 겪은 세대 애환 녹여내

역대 대통령 목소리부터 전투기, 탱크, 뱃고동 소리까지 마이크만 입에 대면 못 내는 소리가 없고 안 웃는 사람 없었던 '원맨쇼의 달인' 남보원(84·본명 김덕용)이 21일 별세했다. 고인(故人)은 올해 연초부터 건강에 이상을 보였으며, 치료와 퇴원을 반복해오다가 이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남보원은 노래와 만담, 성대모사까지 한 사람이 모두 소화하는 '원맨쇼'를 지향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희극인이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한번 들은 소리를 그대로 모사하는 '인간 복사기'로 통했다.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성대모사가 모두 가능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자가 내 흉내 잘 낸다며? 해봐"라는 말을 듣고, 직접 눈앞에서 성대모사를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김정구, 최희준 등 당대 가수들의 모창에도 능했다.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조용필의 '허공'을 김정구 목소리로 부르는 식으로 항상 차별화된 무대를 추구했다.

조선일보

21일 별세한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본명 김덕용)이 본인의 예명 '넘버원'을 의미하는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2010년 8월 인터뷰 당시 모습이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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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1·4 후퇴 때 내려온 피란민이었다. 동국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1960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예명인 남보원은 어떤 일을 하든지 '넘버원'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지었다. 2010년 먼저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백남봉과는 평생 라이벌이자 콤비로 지냈다. 백남봉 타계 당시엔 "하늘에서 다시 만나 '투맨쇼'를 하자"며 비통해하기도 했다.

실향민이자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전투기 엔진 소리와 이착륙 소리, 항구를 떠나는 뱃고동 소리, 기적 소리 등을 콩트에 녹여내며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태산이 높으믄 얼마나 높겠습지비"(함경도 사투리)로 시작하는 '팔도 사투리 시조편'도 실향민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각종 행사에 모습을 보일 정도로 평생 무대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이미 70대로 접어든 후인 10년 전 인터뷰에서도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라디오 방송 성대모사를 가다듬고 있다"고 할 정도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용근 방송코미디언협회 사무총장은 "다리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작년까지도 후배들이 공연하는 지자체 행사에 자주 참가했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아내 주길자씨와 두 딸이 있다. 고인은 2018년 6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3일 낮 12시.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포토]코미디계, 원맨쇼 넘버원 남보원 폐렴으로 별세…향년 84세

[신동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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