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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장기 재임 ‘거수기’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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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정경제 3법’ 시행령 개정 의결]

사외이사제 도입 23년만에 손질

계열사 재직 포함해도 9년 못넘겨

공포 뒤 즉각 시행 ‘3월주총’ 적용

250개사 이사회 1년안건 6722건 중

부결된 건 단 3건, ‘역할’ 유명무실

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 많아

감시보다 대기업 로비통로 전락

독립성 확보·인재풀 다양화 계기

재계선 “세계 유례없는 제재” 반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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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반대표는 한번도 행사하지 않는 ‘장기 재임 거수기’ 사외이사를 볼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가 총수 등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지속돼온 가운데 정부가 사외이사 제도 도입 23년 만에 개선에 나섰다.

정부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를 위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무한대’ 재직이 가능하던 것을 한 회사에서 6년, 계열사까지 포함해 9년을 초과하면 더 이상 근무하지 못하게 한 게 뼈대다. 개정안은 공포 뒤 즉시 시행되는 터라, 오는 3월 주주총회부터 재임 기간이 ‘6년·9년’을 넘은 임기 만료 사외이사는 재선임될 수 없다. 이와 함께 특정 회사 계열사에서 퇴직하면 2년 동안 그 특정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한 상법 시행령에서 냉각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구제와 함께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도의 실효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봐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공시 대상 대기업집단의 250개 상장사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8년 5월 이후 1년간 이들 회사의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부결된 건은 단 3건이었다. 99% 이상이 ‘원안 가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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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으로 총수 등 최대주주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에 앉힌다는 지적과 함께 사외이사 임기의 지나친 장기화가 꼽힌다. 실제 이날 시이오(CEO)스코어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10년 이상은 물론 20년 가까이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찬성’표만 던진 이가 적잖았다. 유진기업의 김진호 사외이사는 해당 기업에서 18년간 사외이사를 맡으며 634건의 이사회 안건에서 반대표를 단 한차례도 행사하지 않았다. 사업보고서로 확인할 수 있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의 통계다. 김선우 영풍정밀 사외이사는 16년을, 오호수 엘에스(LS)네트웍스 사외이사는 12년, 계열사까지 합하면 총 18년을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8년 ‘코스피 100’ 기업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7년 초과 장기 재직 사외이사 수는 ‘오너 기업’에서 23명인 반면 오너 없는 기업에선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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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세계 유례없는 제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자본시장 선진국은 총수 일가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지분이 집중된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고 우리와 달리 주주대표소송 등이 활성화돼 있어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6년·9년’ 임기 제한은 이미 국내 금융회사들에 2016년부터 도입돼 시행되고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임기 제한을 통해 최소한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한편 사외이사 인재풀을 다양화하고 실제 견제를 위한 전문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기업 사외이사의 경우 10명 중 4명가량은 관료 출신으로 쏠려 있고 검찰, 국세청, 기획재정부 등 권력기관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외이사 활동이 감시라는 본연의 구실보다는 ‘전관’을 통한 로비에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일각에선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 ‘직업 선택권 침해’라고 우려하지만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23년 만에 임기 제한을 통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의 효과가 그 우려보다 작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참에 사외이사의 인력풀을 더 다양하게 넓히고 지금보다 전문성을 보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화 김윤주 기자 freehwa@hani.co.kr



3월 주총서 대기업집단 사외이사 76명 교체…8.9% 해당

2022년까지 205명 바꿔야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한 회사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한 상법 시행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59개 대기업집단 264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853명 가운데 8.9%인 76명은 오는 3월 주로 열릴 주주총회에서 재선임이 불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시이오(CEO)스코어가 이날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돼 재선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대기업집단 사외이사 중 76명은 장기 재임으로 이미 ‘6년·9년’을 채웠다. 2022년까지 확대해보면 205명의 사외이사가 ‘장기 재임’을 마치고 교체돼야 한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의 사외이사 57명 가운데 6명은 오는 3월 재선임이 불가하며 에스케이(SK)에선 59명 중 6명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 엘지(LG)는 45명 중 5명, 영풍은 14명 중 5명의 사외이사가 교체돼야 한다.

중소·중견기업까지 확대하면 숫자는 늘어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를 보면 2018년 결산된 사업보고서 기준 상장사 2003개의 사외이사는 3973명인데 18.3%인 727명은 연임 제한 등으로 2020년 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돼야 한다.

재계에선 이번 개정으로 향후 사외이사 인력 구하기에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법무부는 이런 의견에 대해 “올해 주총에서 신규 선임될 사외이사 수는 회사 한 곳당 1.3명 꼴로 기존에 한 회사당 신규 선임돼온 사외이사 수와 큰 차이가 없다”며 예년에 비해 부담이 큰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사외이사 전문인력 확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외이사 인력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기준으로 1393명이 등록돼 있는데 경영인 849명(60.7%), 교수 201명(14.4%), 회계사·세무사 109명(7.8%) 등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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