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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치사한 경마장” 유서···7명의 죽음, 마사회선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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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오체투지 행진을 나흘째 이어가고 있다. 정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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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북소리에 온몸을 굽혀 양 무릎과 양 팔꿈치, 이마를 아스팔트 위에 붙이며 절한다. “둥둥” 소리에 천천히 일어나 합장하며 열 걸음을 걷는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시작된 ‘오체투지’ 행진이다. 흰 상복을 입은 성인 15명이 도로에서 오체투지를 하자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이들은 “마사회가 죽였다”는 팻말을 들고 지난 17일 경기도 과천 한국마사회 본사 앞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닷새째인 21일 청와대에 도착한다.

같은 이유로 매일 밤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빈 상여를 메고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줄에는 영정 사진이 뒤에는 사람 얼굴을 한 말 형상이 따라간다. 경마에서 말 타는 사람, 기수(騎手)로 살다 숨진 고 문중원씨 사건을 알리려는 행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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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출발해 청와대 인근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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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내 기숙사 화장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40세. 그는 유서에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 살 수 없다”“경마장에서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썼다. 끝에는 “마사회 놈들을 믿을 수 없어 복사본을 남긴다”고도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족과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에 따르면 문씨는 일부 조교사가 부당지시를 내린다며 힘들어했다. 조교사는 마주(말 주인)로부터 경주마를 수탁받아 관리하고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고용해 경마에 출전시키는 개인사업자다. 이들은 마사회로부터 면허와 사업허가권을 교부받는데 특수고용노동자인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생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게 시민대책위의 설명이다.

문씨는 유서에 “말을 하위군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대충 타라’는 지시, 말들의 주행습성에 맞지 않은 작전지시” 등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는 인기마가 실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 말의 등급을 낮추게 하려는 작전지시다. 지시를 거부하면 말을 탈 기회를 박탈하거나 위험한 기승을 요구받았다고도 주장했다. 실제 인기마의 등급이 낮아지면 이런 정보를 아는 이들이 고액배당을 받아갈 수 있어 일각에선 부정경마 의혹을 제기한다.



4년간 심사 탈락…“마사회와 친분 관계 있어야”



문씨는 조교사가 되기 위해 자비로 해외 유학을 병행하며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크게 좌절했다고 한다. 문씨는 유서에 “어느 때부턴가 다리·허리·목 어디 성한 곳이 없어 하루빨리 조교사를 하려고 죽기살기로 준비해 면허를 받았다. 그러면 뭐하나, 마방을 못 받으면 다 헛일인데”라고 적었다.

조교사 일을 하려면 마사회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쳐 자격증을 취득하고 마사회의 ‘마사대부심사’를 거쳐 경마장 내 마방(마구간)을 임대받아야 한다. 문씨는 2015년 자격증을 취득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4년간 마사대부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결국 마사회 측과의 친분 관계에 의해 심사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문씨의 아버지도 기자회견에서 “관계자 측근이 계속 마사대부로 배정을 받았다. 참다못해 죽음으로써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서만 7명 목숨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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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문중원 기수의 유족이 17일 청와대 인근 집회 허용 구역까지 행진해 한국마사회의 부정채용 의혹 등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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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책위 등에 따르면 문씨는 2018년 공공운수노조 경마기수지부 조합원으로 가입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그해 1월에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낙순 마사회장이 취임해 노조에서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고 한다.

시민대책위는 “2004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후 문씨까지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경마장의 부조리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며 “이번 정부 들어 4명이 죽음을 택했는데도 마사회와 정부는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지난 3일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이런 노력으로도 변화가 어렵다고 느낄 때 좌절하고,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된다”며 7명의 사례를 설명했다.



마사회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마사회는 우선 문씨 사건 관련해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씨가 제기한 조교사의 부당지시, 마사대부심사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결과에 따라 엄정조치하고 시정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조교사의 부당지시 등 부정행위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으며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마사회가 ‘경마장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마사회는 경마 주최 기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주에 참여하는 마주는 구단주, 조교사는 감독, 기수는 선수 역할이므로 상호 간 계약에 따라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기수 생계 보장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수가 받는 순위 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에 불과하며 나머지 약 55%의 소득은 경주의 성적과 무관하게 기승료, 조교료 등이다”라고 설명했다.

유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고인의 시신은 지난해 12월 27일 상경해 매일밤 추모제가 열리는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있다. 문씨의 부인 오은주(37)씨는 “마사회장은 유족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며 “과천 마사회 본사에 찾아가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죽음의 경주를 멈추기 위해 끝까지 싸우려 결심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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