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2인자의 비애'…총리 출신 대권의 꿈, 이번에는?
[명품리포트 맥]
'일인지하 만인지상', 한 사람 아래 있고 만인의 위에 있다는 뜻인데요.
오늘날엔 국무총리를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총리들이 재임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라 대권 도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번번이 문턱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일인'이 되지 못한 채 만인지상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던 겁니다.
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총리가 제10대 대통령에 올랐지만, 유신체제 하에 '체육관 선거'로 뽑힌 간선 대통령이었습니다.
총리 출신으로 대권을 꿈꿨던 대표적인 인물은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입니다.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견제 속에서 대권을 넘봤던 김 전 총리는 직선제로 치러진 87년 공화당을 꾸려 대선에 나섰으나 패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막상 권력을 잡자 김 전 총리와의 내각제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군소 야당의 총재로 전락한 김 전 총리는 결국 2004년 총선에서 10선 고지에 오르지 못하고 정계를 떠나면서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됩니다.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화려한 엘리트 코스만 달린 이회창 전 총리가 단 하나 품어보지 못한 건 대통령의 자리였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경질됐지만 오히려 대쪽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정치적 날개를 달았습니다.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선대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차기 대선 후보로 뽑히며 대권을 눈앞에 뒀습니다.
하지만 이인제 전 의원의 탈당과 김대업 병역의혹 조작사건으로 김대중, 노무현 후보에게 석패했고, 2007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다시 총리로 기용된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안정시키면서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총리직을 그만둔 뒤로 중도실용 정치를 표방하며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실패한 인사"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려 큰 내상을 입었고, 결국 공무원 출신 특유의 한계를 드러내며 대권의 뜻을 접고 말았습니다.
최근 여의도에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두 인물의 대권 가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민주당 소속인 이낙연 총리입니다.
퇴임과 함께 정치판에 복귀하는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안희정, 김경수, 이재명 등 여권 잠룡들의 수난 속에 유력한 대안으로 부각된 이 총리는 총선에서 당 선대위원장직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 속에서 당내 세력기반이 약한 점이 단점으로 꼽히자 정면돌파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법무부장관과 총리를 지낸 황교안 대표.
이회창 전 총리처럼 정치 신인임에도 곧바로 당 간판을 꿰차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채 장외투쟁을 비롯해 삭발, 단식 등 강성 행보로 지지층 결집에 나서면서, 비교적 빨리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외연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정세균 의원도 국회의장 출신으로는 처음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되면서 총리 대망론에 가세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낙연 총리, 당밖에선 황교안 대표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1인자를 조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던 역대 총리들은 정치판에 뛰어들면 새로운 도전을 뚫고 나서야했습니다.
안으로는 계파 정치를 통해 자기 세력을 구축해야 했고, 밖으로는 이미지 정치로 관심도를 끌어 올려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 다 실패해 2인자의 흑역사만 추가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2인자라는 자리는 1인자의 실정 책임을 공유하는 데다 역동적 변화를 원하는 특유의 국민정서 탓에 마이너스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총리 출신들이 실패로 점철된 2인자 프레임을 뚫고 대권을 쟁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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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리포트 맥]
'일인지하 만인지상', 한 사람 아래 있고 만인의 위에 있다는 뜻인데요.
오늘날엔 국무총리를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총리들이 재임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라 대권 도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번번이 문턱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일인'이 되지 못한 채 만인지상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던 겁니다.
박정희 정부의 3공화국 이후 대통령 직선제에서 총리 출신으로서 대권을 잡은 사람은 아직 한명도 없습니다.
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총리가 제10대 대통령에 올랐지만, 유신체제 하에 '체육관 선거'로 뽑힌 간선 대통령이었습니다.
총리 출신으로 대권을 꿈꿨던 대표적인 인물은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입니다.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견제 속에서 대권을 넘봤던 김 전 총리는 직선제로 치러진 87년 공화당을 꾸려 대선에 나섰으나 패했습니다.
강고해진 지역주의 구도에서 한계를 깨달은 김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킹메이커로 변신하면서 1인자 자리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막상 권력을 잡자 김 전 총리와의 내각제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군소 야당의 총재로 전락한 김 전 총리는 결국 2004년 총선에서 10선 고지에 오르지 못하고 정계를 떠나면서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됩니다.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화려한 엘리트 코스만 달린 이회창 전 총리가 단 하나 품어보지 못한 건 대통령의 자리였습니다.
이 전 총리는 대통령의 방탄 또는 대독 역할을 하는 기존의 총리 관행에서 벗어나 소신 행보를 보이며 주목 받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경질됐지만 오히려 대쪽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정치적 날개를 달았습니다.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선대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차기 대선 후보로 뽑히며 대권을 눈앞에 뒀습니다.
하지만 이인제 전 의원의 탈당과 김대업 병역의혹 조작사건으로 김대중, 노무현 후보에게 석패했고, 2007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습니다.
고건 전 총리는 박정희 정부에서 전남도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교통부 농림부 내무부 장관과 서울시장,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우리나라 엘리트 관료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다시 총리로 기용된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안정시키면서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총리직을 그만둔 뒤로 중도실용 정치를 표방하며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실패한 인사"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려 큰 내상을 입었고, 결국 공무원 출신 특유의 한계를 드러내며 대권의 뜻을 접고 말았습니다.
최근 여의도에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두 인물의 대권 가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민주당 소속인 이낙연 총리입니다.
퇴임과 함께 정치판에 복귀하는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안희정, 김경수, 이재명 등 여권 잠룡들의 수난 속에 유력한 대안으로 부각된 이 총리는 총선에서 당 선대위원장직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 속에서 당내 세력기반이 약한 점이 단점으로 꼽히자 정면돌파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법무부장관과 총리를 지낸 황교안 대표.
이회창 전 총리처럼 정치 신인임에도 곧바로 당 간판을 꿰차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채 장외투쟁을 비롯해 삭발, 단식 등 강성 행보로 지지층 결집에 나서면서, 비교적 빨리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외연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정세균 의원도 국회의장 출신으로는 처음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되면서 총리 대망론에 가세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낙연 총리, 당밖에선 황교안 대표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1인자를 조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던 역대 총리들은 정치판에 뛰어들면 새로운 도전을 뚫고 나서야했습니다.
안으로는 계파 정치를 통해 자기 세력을 구축해야 했고, 밖으로는 이미지 정치로 관심도를 끌어 올려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 다 실패해 2인자의 흑역사만 추가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2인자라는 자리는 1인자의 실정 책임을 공유하는 데다 역동적 변화를 원하는 특유의 국민정서 탓에 마이너스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총리 출신들이 실패로 점철된 2인자 프레임을 뚫고 대권을 쟁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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