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아침에 서로의 어깨를 안마해주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컵라면 한 개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이 경우 나는 ‘그러나’를 빼는 방향으로 문장을 수정한다. 앞문장과 뒷문장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상대방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마음과 내 몫의 라면을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은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모두들 여러 갈래로 동시에 뻗어나가는 욕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중일 것이다. 나는 아까의 문장을 이렇게 고친다.
“아침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안마해주었고 저녁엔 컵라면 한 개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앞과 뒤가 그다지 모순적인 내용으로 읽히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접속사가 사라지자 양쪽 다 그럴 법한 일로 읽힌다. 문장 속의 두 사람은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지내는 이들로 보인다.
접속사가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전혀 없는 노래가 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이야기>에 흐르는 노래다. 주연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극중에서 이혼이 확정된 뒤 취한 채로 그 노래를 부른다. 가사의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Somebody hold me too close(날 너무 꼭 안는 사람)/ Somebody hurt me too deep(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Somebody sit in my chair and ruin my sleep(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고)/ And make me aware of being alive(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는 사람)/ Being alive(살아가는 것)/ Somebody need me too much(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Somebody know me too well(날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body pull me up short(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And put me through hell(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And give me support for being alive(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Make me alive(날 살아가게 해)/ Make me confused(날 헷갈리게 해)/ Mock me with praise(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Let me be used(날 이용하지)/ Vary my days(내 삶을 변화시켜)/(…)/ Somebody crowd me with love(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Somebody force me to care(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Somebody make me come through(내가 이겨나가게 해주는 사람).”
서로 충돌하는 듯한 문장들이 마구 섞여있다. 누군가는 같은 내용을 아래와 같이 말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날 너무 잘 알고 넘치는 사랑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며 날 지옥에 던져놓는다.”
이 노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천국과 지옥을 예기치 못하게 넘나드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아가게도 하고 헷갈리게도 하며, 날 가지고 노는 동시에 내가 이겨나가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성립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복합성이라고 느낀다. 이 동시다발적인 복잡함에 대해 말하는 게 문학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그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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