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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국민연금 주주권 지침, 경영 위협?…‘내부 지분율 57%’ 재계 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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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위 재계 대표 반대로 의결 못해

국민연금 반대로 부결된 안건

올해 622건 중 21건에 그쳐

반대사유 이사 장기연임 등 ‘기본 사항’

“외국 연기금에 비해 반대기준 느슨”

기업들은 ‘황금낙하산’ 등 경영권 방어

국민연금 지분 많아야 12%, 관여 불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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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안’ 제정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재계의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 반면 학계나 연구기관은 지분 분포나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에 비춰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건복지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후속조처로 마련한 이 지침안은 지난달 29일 기금운용위원회 심의에서 사용자 대표 위원들의 반대로 의결에 실패했다. 지침안은 재계의 요구로 국민연금 주주권 대상 선정기준과 세부 절차를 담았다. 국민연금의 ‘중점관리’ 사안은 낮은 배당, 임원 보수 과다, 횡령·배임 등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등이다. 여기에 해당된 기업과 충분히 대화했는데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만 정관 변경, 이사·감사 선임 등 주주제안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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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재계에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가세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노출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16일 국민연금이 공개한 올해(1~9월) 의결권행사 내역을 보면, 주주총회 안건(3182건)에 반대 의결권(19.6%·622건)을 행사해 부결된 비율은 3.4%(2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견주면 반대 의결권 비율은 비슷했지만 부결 비율이 다소 올라갔는데, 올해 감사선임과 정관변경 안건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일부 가세했는데도 여전히 부결 가능성이 낮아 기업들은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이사·감사 후보를 재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은 지난 3월 한진칼 주총에서 제안한 정관변경안이 부결된 데서 보듯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후의 수단으로 투자철회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반대한 사안은 이사·감사 선임안(248건)으로 반대사유는 최근 5년 내 계열사 등 상근 임직원(22.2%), 10년 이상 장기연임(21.0%), 과도한 겸임(13.7%) 차례로 많았다. 수치로 드러나는 기본적인 요건에 관한 사항들이다. 반면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저조한 경영 성과, 경영진 일탈 행동, 독립성 결여 등이 주된 반대 사유였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 센터장은 “6대 외국 연기금은 이사로서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독립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선임에 반대하거나 해임 주주제안을 낸다. 이들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반대 기준은 매우 느슨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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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위임장 대결을 통한 경영권 위협이 한국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제개혁연구소가 국내 상장사(2010~2018년)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위한 공개매수 시도는 9년 동안 단 1건에 그쳤고 이마저도 실패했다. 의결권의 과반을 확보하기 위한 위임장 대결 시도는 35건으로 이 가운데 2건만 성공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이처럼 경영권 위협이 없는 이유로 국내기업의 소유구조를 들었다. 총수가 있는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지배주주 지분은 적지만 친인척과 계열사 임직원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을 더한 ‘내부 지분율’은 평균 57.5%에 이른다. 많아야 12% 정도인 국민연금 지분으로는 사외이사 선임 같은 경영권 관여가 불가능한 구조다. 또 기업들은 비상상황에 대비해 백기사 역할을 해 줄 제3자에 대한 자사주 매각, 그룹간 상호주 보유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놨다. 정관에 임원 해임 의결요건을 강화하거나, 인수·합병으로 경영진이 물러날 경우 거액의 퇴직금을 줘야 하는 ‘황금낙하산’ 조항을 도입한 곳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먼저 도입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과 기관투자자의 ‘윈-윈’ 관계가 정착되고 있다는 점을 국내 기업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선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외국에서는 기업이 먼저 주총 안건 등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의견을 요청해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임원 보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문제점 등을 비공식적인 대화로 사전에 조율하면 외부의 무리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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