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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군 총과 칼에 살해됐는데…왜 이들의 '5·18'은 인정받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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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7공수 부대원들이 1980년 5월18일 금남로에서 대검을 착검한 채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광주에 가장 먼저 투입된 7공수는 5·18진압작전이 종료된 이후에도 열흘 동안 광주에 남아 무등산 등에서 작전을 계속했다. 고 신복진 사진가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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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1일 광주 조선대 뒷산에서 한 남자 고등학생이 목과 팔 한쪽, 성기가 절단된 채 발견됐다. 같은 날 한 19세 여성도 오른쪽 가슴 부위에 자창을 입고 복부에 집중 사격을 받았다. 같은 날 밤늦게 광주역에서 수세에 몰린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할 때였다. 한 중년 남성이 집밖으로 나갔다가 계엄군에 붙잡혔다. 계엄군은 그를 전남대로 끌고가 고문한 뒤 암매장했다. 이들은 모두 군의 총기와 대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허연식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연구실장이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세명의 희생은 모두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 진실들은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번에 출범할) ‘5·18진상조사위원회’야말로 움직이지 않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 조사 결과가 반드시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5·18 관련 시민단체들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5·18 비공개 자료 공개 의미와 진상조사위원회 출범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진상규명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했다. 진상조사위는 이르면 이번주 안에 출범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뒤 약 1년3개월 만이다.

시민단체들은 피해자 중심의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허 실장은 “과거청산의 일반적 원칙으로 작동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대전제로 해야 한다”며 “대부분 군 기록은 왜곡, 조작, 은폐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중심에 놓지 않으면 미궁에 빠질 수 있다. 피해자들의 주장, 증언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들의 양심적인 증언과 제보를 얻기 위해 그에 합당한 보상도 필요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화해위원회가 가해자들을 사면해주면서 증언을 이끌어낸 사례가 제시됐다. 진상조사위가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필요가 있다. 허 실장은 진상조사위에 강제수사권이 없다는 점을 한계로 들며 “광주 양민학살의 증거가 명확하다면 반드시 검찰에 선제적으로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이뤄진 수사에서는 책임자들 대다수가 수사 대상에서 빠지고 기소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의 윗선을 명확히 규명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의갑 광주전남 언론인회 회장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 진압작전 개입을 확실히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이 사실상 5·18 총사령관이었다는 점을 밝혀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도 중요하다. 허 실장은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폄훼가 지속되고 있다. 1980년부터 7년간 유족들은 매일 밤 9시 TV 뉴스에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전 전 대통령을 봐야 했다.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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