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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03년 전 한국 최초 누드화 ‘해질녘’ 고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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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미술학교 최우등 김관호의 졸업작품

평양 대동강변 젊은 여인 2명의 목욕 장면 담아

갤러리현대 50주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전 출품돼

김관호·오지호 등 도쿄미술학교 출신 자화상 5점도

오윤 ‘비천’ 등 민중미술 작품들도 처음 갤러리현대 전시


한겨레

‘그림 사진이 도착했으나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사진으로 게재치 못함.’

1916년 6월2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기사 내용은 당시 독자들의 궁금증을 부추켰다. 이 신문은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최우등 졸업한 당시 스물여섯살 화가 김관호(1890~1959)가 졸업작품인 누드그림 <해질녘>으로 당시 일본 최고의 미술전시 행사였던 문부성미술전람회(문전)에서 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림 도판은 외설적인 ‘나체화’란 이유로 빼버렸다.

<해질녘>은 평양 대동강변 능라섬 기슭에서 막 목욕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두 여인의 알몸 뒤태를 고전주의적 구도와 인상주의적 색감을 절충한 터치로 그렸다. 한국 최초로 그려진 근대 누드그림이자 작품 수준 면에서 일정한 완성도가 있는 최초의 양화였다. 하지만, 누드화는 당대 조선 사회에서는 노출이 허용될 수 없는 금기에 가까운 도상이었다. 결국 <해질녘>은 언론에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 그가 1923년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에 출품한 또다른 여인의 나체화 <호수>또한 전시만 됐고, 조선미전 도록에 희미하게 실린 도판 외엔 대중이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작가 김관호 또한 1916년 귀국한 뒤 불과 10여년만에 사회적 냉대에 지쳐 붓을 꺾어버렸다. 해방 뒤엔 월남하지 않고 평양에 남아 말년기에 다시 붓을 잡고 풍경 그림을 다시 그렸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여러 역사적 질곡 탓에 <해질녘>의 그림 실물 자체도 해방 뒤 이땅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져버렸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서야 근대 미술사료들을 잇따라 발굴해낸 당시 미술기자 이구열씨의 취재로 도쿄미술학교 후신인 도쿄예술대학 자료실 수장고에 작품이 보존돼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된다. 국내에 작품 실물이 처음 대여돼 전시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이 지난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기획전 ‘한국근대미술:유화-근대를 보는 눈’에서였다. 처음엔 도판공개조차 가로막혔던 <해질녘>을 국내 대중이 실물로 볼 수 있게 되기까지 무려 80년 넘는 세월이 흘러야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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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여성 알몸을 그린 누드화이며, 한국 근대 양화 역사의 시원으로도 꼽히는 김관호의 대표작 <해질녘>이 다시 고국에 돌아와 선보이게 된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18일부터 시작하는 특별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이 그 자리다.

이 전시는 국내 최초의 상업화랑인 갤러리 현대가 내년 개업 50돌을 맞아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수놓은 화가 54명의 대표적 인물화 70여점을 1부(본관)와 2부(신관)로 나누어 모은 작품 마당이다. 자문 위원으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와 근대미술사가인 최열, 목수현, 조은정씨,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참여해 지난 수개월간 논의를 거쳐 작품을 선정했다.

본관의 1부 전시는 1910~1950년대까지 화단 초창기의 주요 인물화들을 배치했다. 들머리 공간의 안쪽 벽에 걸린 이번 전시의 대표작 <해질녘>과 더불어 한국 최초 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이종우, 김용준, 오지호로 이어지는 1910~20년대 도쿄미술학교 유학생들의 자화상 5점을 잇따라 살펴보면서 초창기 인물화의 계보를 짚는 것이 1부 감상의 알짬이다.

<해질녘>은 70년대 도쿄예술대학 자료관에 실물이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근대미술:유화-근대를 보는 눈’ 전을 통해 고국에 처음 전시됐다. 그 뒤 2005년과 2010년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이 각각 마련한 ‘광복 60주년 기념-한국미술 100년’전과 2010년 ‘아시아 리얼리즘’ 전을 거쳐 이번에 네번째로 국내 대여 전시를 열게 됐다. 이 그림은 목욕을 마치고 긴 머리를 말리거나 몸을 닦고있는 두 여인의 알몸 뒷 모습을 유연한 필선으로 능숙하게 묘사하면서 대동강의 아련한 석양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시켜 조선적인 공간과 본격적인 서구 양화의 구도를 조화시킨 수작이다. 기법이나 회화 사조 측면에서 숙련된 한국 양화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곤 한다. 수염을 기른 채 어둔 색의 털모자와 털옷을 입은 김관호의 결기가 비치는 또다른 졸업작품인 자화상도 함께 나왔다.

1층에서 <해질녘>과 마주보는 벽에는 당대 조선의 최고 천재화가로 꼽힌 이인성의 1934년 대작 <가을 어느날>이 내걸려 당시 화단의 유행이었던 조선 향토색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나혜석의 알려지지 않은 1940년대 발굴 작품인 <비구니>, 이쾌대의 해방공간기 명작인 <군상>연작 가운데 일반 전시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군상 Ⅲ>도 반갑게 모습을 드러냈다. 30년대 유복한 조선인 가족의 복식과 주거를 생생히 볼 수 있는 배운성의 <가족도>, 국민화가 이중섭·박수근의 낯익은 가족그림과 이웃그림들, 친일작가란 오명을 안았지만 60~70년대까지 화단의 정상에 군림했던 김인승, 심형구의 낯선 인물초상, 박항섭의 여인군상 대작 등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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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내 화단의 주요 인물화 대표작들이 등장하는 본관의 2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지하 1층을 뒤덮은 이른바 민중미술 작가들의 인물화 전시공간이다. 오윤, 홍성담, 강요배, 황재형, 신학철, 김정헌, 노원희, 임옥상, 이종구, 최민화 작가의 손맛 진득한 인물화들이 이 화랑 공간에 처음 떼로 내걸려 80년대 엄혹한 시대와 맞섰던 현실참여 작가들의 강인한 감수성을 전해준다. 국내 최고 최대의 상업화랑이었던 갤러리 현대는 원래 이우환, 박서보 같은 모더니즘 작가들의 철옹성이었다. 현실참여적인 민중미술 작가들에게는 조롱과 냉소, 비판의 대상이 됐던 이 화랑의 과거 전력을 감안하면, 갤러리현대에 대거 전시된 민중미술 컬렉션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전시를 통해 미술판에 처음 공개되는 오윤(1946~1986) 작가의 1985년작 유화 <비천>(개인소장)은 눈길을 끌어당기는 화제작이라 할만하다. 80년대 초 민중예술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 춤꾼 이애주씨의 얼굴을 옮겨 소복 차림으로 푸른 띠를 흩날리면서 하늘을 나는 비천상의 이미지로 각색해 그린 유화 소품이다. 판화를 주로 찍었던 고인의 희귀한 유화 작품인데다, 단순한 형상이면서 대상의 특징과 기질을 단박에 포착하는 특유의 작법이 도드라진다. 원래 그림을 소장했던 이애주씨는 캔버스 뒷면에 ‘오윤형이 1985년 4·19묘지 맞은편 작업실에서 나 이애주에게 주면서 “연지와 입술을 붉게 칠하고 다니면 어떨까하고 칠해보았다” 고 수줍어 하며 얼굴을 붉혔다’고 소장하게 된 경위를 적어놓았다. 이외에도 본관 1, 2층에는 거장 김환기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그린 항아리 든 여인들의 군상화와 천경자의 70년대 걸작인 <탱고가 흐르는 황혼>를 비롯해 김기창·이만익·황영성·강연균·김홍주·김원희 작가의 인물화, 군상화들이 나와 당대의 삶과 시대상을 증언하고 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미술사가 목수현씨는 “간추린 우리 화단의 근현대 인물화 전시를 통해 지난 100년간 격동했던 한반도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삶을 보는 시선 자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려했다. 그동안 인물화를 통해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는 자리가 거의 없었던만큼 의미있는 시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1일까지.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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