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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만물상] '구자경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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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이란 숫자는 LG그룹 가문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큰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을 때 나이가 일흔이었다. 그는 환갑 무렵부터 지인들에게 "70세까지만 하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신 맑을 때까지만 일하고 추한 모습 안 보이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정확히 약속을 지켰다. 당시 그가 '명예회장'직을 달고 막후 경영을 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후계자에게 모든 걸 맡겼다. 사무실에서도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나온 말이 '한국 최초의 무고(無故) 승계'였다. 경영자가 사망하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돌발적 유고(有故) 상황이 없는데도 물 흐르듯 경영권 승계와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국내 첫 사례를 남겼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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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은 충남 천안에 설립한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서 된장 연구를 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곳에 공장을 차려놓고 "어머니의 된장 맛이 그립다"며 제대로 된 된장을 꼭 만들겠다고 했다. 영락없는 '시골농부' 모습으로 24년을 보냈다.

▶구자경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그룹을 책임지면서 '준비 없는 후계자'란 걱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회장 재임 25년간 그룹 외형을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1150배 키웠다. 가마솥으로 화장품 크림을 만들고 라디오·선풍기·TV를 조립하던 락희·금성을 글로벌 화학·전자의 LG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내 자식만큼은 준비된 리더가 되게 하겠다"며 그룹의 미래 청사진까지 만들어놓은 뒤 물러났다. 퇴임 10년 전 미리 은퇴를 선언한 것도 후계자와 그룹을 위한 배려였다. 공장에서 기름밥 먹으며 20여년간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던 그는 장남에게도 엄격했다. 고 구본무 회장은 바통을 이어받을 때까지 20년 넘게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며 온갖 궂은일을 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다정한 기억보다 무서운 기억이 많다"고 했다.

▶일흔셋에 작고한 구본무 회장도 아버지처럼 70세 은퇴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한다. 회장직을 이어받을 후계자의 나이를 고려해 70세를 넘겼지만 결국 70대 초반에 그만둔 결과가 됐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LG와 GS는 280년 전쯤 사돈관계를 맺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두 그룹은 '인화단결, 정도(正道)경영, 무고승계' 등에서 서로 닮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오래전부터 은퇴를 생각해왔다"며 이달 초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71세에 무고 승계를 한 셈이다. 경영권을 놓고 부자간, 형제간 소송까지 벌이는 한국 기업계에 두 가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영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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