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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93]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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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레슨

피아노를 치는데 자꾸 음이 엇나갔다 도를 누르자 파, 파를 누르자 미,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연주했다 솔솔미미레 쳤는데 도라도시라파 피아노를 치는데 자꾸 음이 엇나갔다 레슨을 끝내고 보도블록을 밟으며 집으로 갔다 불타는 집을 보았다

―황인찬(1988~ )

태어나 성장기를 거치면서 ‘사회’는 개인을 그 사회에 맞게 조율(레슨)하지요. 도덕과 상식을 주입하고 양심이라는 것까지 심어줍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성격은 나라 안에서도 속한 집단에 따라 혹은 계급에 따라 크게 다른 모양입니다. 드러나는 비상식과 비도덕을 보노라면 살아갈 맥이 풀립니다. 이 시는 존재의 저변에 대해서 근본적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배웁니다. 그러나 연주되어 나오는 소리는 제소리가 아닙니다. 배운 대로 치(고 싶지 않거나)지 않았거나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입니다. 건전한 사회의 ‘조율’은 이해관계가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진리’의 조율이어야 합니다. 조율되지 않은 사회(선생)의 ‘레슨’에 대해서 이 아이는 이미 눈치챘습니다. 하나 아직 저항할 힘은 없습니다. ‘보도블록’이라는 규정된 길 저편, ‘불타는 집’의 예감은 섬뜩합니다. 이 심드렁한 비극적 몽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마비’에 대한 강렬한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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