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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제38회 중앙시조대상] 율격의 씨앗 품고 주름진 세상 달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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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상심한 하얀 달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봄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겨울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 어디에나 그늘은 있다. 탕! 총소리가 울리면 앞만 보고 죽어라 뛸 것이다.

밤새 쓴 수십장의 원고를 폐기한 후엔 덜컥, 겁이 났다. 테두리가 까만 형광등에 타 죽은 날벌레들의 참혹한 열정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되어준 건 시였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문 앞에 서 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불을 잡고 더듬거릴 적마다 목포대 국문과 교수님들이 등피가 되어 주었다. 나를 믿고 불러준 김선태 교수님 덕분에 첫발을 뗄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일깨워준 이훈 교수님, 조용호 교수님. 은사님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졌다. 가족에겐 고맙고 늘 미안하다.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 깨닫게 해준 중앙대 문창과 이승하 교수님과 행간의 여백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 홀로 울고 있었을 ‘스몸비’를 날아오르게 해 준 중앙일보사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다정한 이름들을 부르며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율격의 씨앗을 품고 주름진 세상을 달릴 것이다. 발등이 부어올라도 아랑곳하진 않을 거다. 누군가가 외롭고 지칠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시를 품을 수만 있다면.

■ 스몸비

옛날엔 지구를 사각이라 생각했지

배 타고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네모난 스마트폰처럼

세상 끝은 낭떠러지

액정화면 속에는 친구들이 생성되고

손끝으로 휙휙 넘기는 아프리카 난민 소식

엄마의 안부 전화는

무음으로 진동한다

만날 일 없는 세상, 꽃은 또 피고 지고

깜빡이는 불빛 따라 길 위에서 길을 잃지

오늘도 비좁은 감방

긴 휴식을 취한다

※스몸비: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

■ ◆김수형

중앙일보

김수형 시인


전남 목포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비평 전공, 목포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전공.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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