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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특파원리포트] 비핵화 협상, 2020년 더 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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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조야 北 ICBM 발사 임박 관측 / 트럼프, 2년 만에 ‘안보리 카드’ / 협상 주도권 北에 넘어간 상황 / 신년 도발 멈춰세울 방안 시급

북한이 14일 담화를 통해 서해 위성발사장 시험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자, 미 조야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임박했다는 기류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에 도발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북한의 미래 위협에 대해 장거리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는 ‘우주 발사체 발사’이거나 ‘ICBM 발사’일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후자에 방점이 찍힌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제시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대미 압박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만큼 이젠 도발의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흘러왔을까.

세계일보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북한이 일방적으로 연말 시한을 설정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 4월12일 시정연설 때다. 김 위원장은 당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도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 관계는 훌륭하고 3차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미 언론은 당시 북한이 내년 미 대선을 바라보면서 협상을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고 지적했고, 올해를 보름 남겨둔 지금 북·미 관계는 북한의 선택에 이끌려가고 있다.

비핵화 협상은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성사됐지만,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지지부진한 실무협상은 지난 10월 초 덴마크 스톡홀름 협상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결렬 선언을 한 뒤로 교착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연말 시한을 설정한 직후부터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 대수롭지 않다고 평가절하하면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북한의 도발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북한의 13차례 도발 끝에 미국은 2년 만에 북한 미사일 문제를 안보리 회의에 부쳤다. 크래프트 대사는 이 회의에서 탄도 미사일 발사는 사거리와 관계없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변한 것이다. 북한이 미 대선을 언급하면서 압박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더는 참지 못하고 경고를 날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2년 만에 꺼내든 ‘안보리 카드’는 무엇을 남겼을까.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회의에서 북·미 간 대화 재개를 촉구하면서도, 먼저 기존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북한 입장을 그대로 읊었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했다고 엄포를 놨고, 미 언론은 북한이 ICBM 발사로 마음을 굳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거부하는 안보리 인권 회의를 무산시킨 것을 두고도 비판받고 있다. 유럽 회원국들이 요구한 북한 인권 회의 대신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안보리 회의를 개최, 대북 유화책을 제시하면서 고강도 도발을 중단하라는 압박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려 했지만 결국 양쪽 모두 성과가 부실하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절박함을 드러내면서 ‘인권보호국’이라는 평판만 손상됐다는 것이다.

북·미 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2020년은 더욱 암울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 하원의 탄핵소추안 표결과 상원의 탄핵심판이 끝나는 내년 1∼2월까지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기 힘들고, 2월 이후 본격화하는 대선 캠페인으로 북·미 관계 개선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북한은 내년 11월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겹쳐진다.

북한이 연말연초에 고강도 도발을 감행하면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관계를 통해 내세워 온 ‘외교 치적’은 사라진다. 두 정상 간 관계도 악화할 수 있다. 신년에는 북·미 관계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전이나 2017년 ‘말 전쟁’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의 도발을 멈춰세울 방안이 시급하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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