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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인재만이 경쟁력”… 글로벌 LG 키운 재계 큰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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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 / 하루걸러 공장 숙직하며 새벽 거래 / 1970년 2대 회장 취임 후 25년 동안 / 매출 1150배 성장… 직원 수 10만명 / 재벌 최초 기업공개·고객가치 경영 / 잡음 없이 장자 승계 후 70세 은퇴 / 자연인으로 돌아가 버섯 연구 몰두

세계일보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한 상남(上南)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검정 뿔테안경에 경상도 사투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고인이 회장으로 재임한 25년간 LG그룹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은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그는 ‘럭키금성’을 글로벌 ‘LG그룹’으로 키우고 우리나라 화학·전자산업의 중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경영혁신사에 굵직한 발자취들을 남겼다.

구 명예회장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했다. 1947년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부친의 부름을 받고 스물다섯에 이사로 입사했다. ‘이사’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어 손수 판매하는가 하면, 하루걸러 공장 숙직을 하며 새벽마다 도매상들을 맞았다.

1969년 구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LG가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45세가 되던 1970년 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사람만이 경쟁력이라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을 신념으로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공장과 여천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었고, 1976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중에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세웠다. 재임기간에 설립된 연구소만 70여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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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년 6월, 구자경 명예회장(가운데)이 금성사 고객서비스센터를 찾아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하고 있는 모습. LG 제공


이를 바탕으로 LG그룹은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19인치 컬러TV, 공랭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등 대표 제품들이 구 명예회장 재임 때 개발됐다.

1975년 구미공단에 컬러TV를 연간 50만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1976년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1980년대에는 컴퓨터와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만들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수직계열화를 완성, 1980년대 초 충북 청주에 종합 생활용품 공장을 건설했다. 구 창업회장이 플라스틱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1954년 철수했던 화장품 사업에 다시 진출, 현재 생활용품·화장품 업계 선두기업인 LG생활건강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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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명예회장(오른쪽 세번째)이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호 컬러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LG 제공


구 명예회장은 그룹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기업공개, 자율경영, 고객중심 등 선진 기업경영의 길을 개척한 ‘혁신 전도사’로 평가받는다.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은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투명경영’을 강조하며 국내 대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88년 재벌 총수의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권한을 이양하는 ‘자율 책임 경영체제’를 확립한 것도 구 명예회장의 공로다. 이어 1990년 2월 당시 생소한 개념의 ‘고객가치 경영’을 선포, 기업경영의 축을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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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장남인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그의 퇴진은 국내 재벌가 최초의 무고(無故·아무런 사고나 이유가 없음) 승계로 기록됐다. 또 3대에 걸쳐 57년 동안 이어진 구씨와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도 ‘아름다운 이별’로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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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LG 인재육성의 요람인‘인화원' 개원 기념촬영.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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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명예회장(가운데)이 연암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내를 산책하고 있다. LG 제공


구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충남 천안 연암대학교 농장에 머무르며 버섯 연구를 비롯해 자연과 어우러진 취미에 열성을 쏟았다. 슬하에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구본무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으며,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에 별세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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