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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무고 퇴진과 허씨와의 아름다운 이별­…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한 구자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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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성과 이외 재계에선 처음으로 회장직을 스스로 후진에게 물려줬고, 그 과정에서 별다른 잡음은 없었다. 또 2000년대 구씨와 허씨 57년 양가 동업 체제를 불협화음 없이 마무리해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젊은 세대가 그룹 이끌어야 한다”며 스스로 퇴임

14일 재계에 따르면 고인은 70세였던 1995년 2월 LG와 고락을 함께 한 지 45년, 회장으로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아무런 사고나 이유가 없음)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퇴임에 앞서 사장단에게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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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여의도 트윈타워 대강당에서 LG그룹 총수로서의 마지막 행사인 경영이념선포 5주년 행사를 주관하던 구 명예회장의 모습.


회장 이·취임식장에서는 “돌이켜 보면 행운보다는 고통이, 순탄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던 세월이었지만,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늘 곁에 있었기에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영혁신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준 임직원들의 저력과 노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명과 감사로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이어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며 “이제 공인의 위치에서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니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 무상감도 들지만,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고 말해 임직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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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간 구·허 양가(家) 동업체제도 아름답게 마무리

구 명예회장의 아름다운 퇴임 이후 구씨와 허씨 간 3대에 걸친 양가 동업 체제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양가는 57년 간의 동업관계를 매듭짓는 LG와 GS그룹의 계열분리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했다. 구 명예회장 직계가족은 전자와 화학, 통신, 서비스 부문을 맡아 LG그룹으로, 허씨 집안은 GS그룹을 설립해 정유와 유통, 홈쇼핑, 건설 분야를 맡았다. 전선과 산전, 동제련 등은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창업고문이 LS그룹을 공동 경영하기로 했다.

양가의 이런 ‘아름다운 이별’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뜻이기도 했다. 구 창업회장은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구 명예회장 또한 ‘인화(人和)의 경영’을 철저히 지켰고, 상호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주요 사업을 이끌어 왔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사진=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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