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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방어인지, 새끼 돼지인지… 10㎏ 덩치들이 밥때 되자 퍼덕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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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겨울철 별미… 방어 양식장 체험

조선일보

뜰채 안에서 맹렬하게 퍼덕거리는 대방어는 실제 무게(10㎏)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균형 잡고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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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사람들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별미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방어일 것이다. 제철을 맞아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른 겨울 방어는 미식가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참치보다 낫다'며 알아줬지만 잡히는 기간이 한겨울 2개월 정도로 짧고 가격도 비싸 대중적 인지도는 없었다. 하지만 5년여 전부터 방어 양식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판매가 늘었다. 지난해 11~12월 이마트에서는 연어를 제치고 광어·참치에 이어 매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광어를 제치고 '국민 생선' 자리를 넘보는 방어, 어떻게 생산될까. 국내 방어 양식장 대부분(20여 곳)이 몰려 있는 경남 통영을 찾았다.

먹이 주니 몰려드는 방어떼

방어 양식장은 통영 산양읍 척포항 바로 앞바다에 있었다. 테니스코트만 한 직사각형 양식장 수십 개가 작은 섬처럼 떠 있었다. 양식장에 내리자 '온누리수산' 정종덕 대표가 반갑게 맞았다. "방어 양식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하자, "마침 밥 줄 때가 됐다"고 했다. 사료 분쇄·배합기에 고등어·갈치·청어 등 냉동 생선 덩어리를 넙치 가루와 함께 집어넣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방어 먹이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미니 프랑크 소시지 크기의 방어 먹이 펠릿(pellet)이다. 이곳으로 안내해준 '창포수산' 차봉석 대표는 "펠릿은 방어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고 했다. "생선을 그대로 먹이기도 하죠. 양식업자마다 달라요."

'다라이'라고 흔히 부르는 대형 고무 대야에 펠릿을 수북이 담아 양식장으로 끌고 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방어들이 떼 지어 수면으로 몰려들었다. 정 대표는 "시간이 돼 사람이 걸어가면 올라온다"고 했다. "하루 한 번 먹이는데, 몇 개월 양식장에서 지내면 방어들도 먹이 때를 알아요, 강아지처럼. 배가 불러서 안 먹을 때까지 주세요. 하루에 자기 체중의 10%를 먹는 녀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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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짜리 대방어.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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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삽으로 펠릿을 수면에 뿌렸다. 방어들이 그야말로 개떼처럼 덤벼드는 바람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방어는 언뜻 보기에도 엄청나게 컸다. 방어 한 마리의 크기가 통통한 새끼 돼지 정도는 충분히 돼 보였다. 정 대표는 "이 양식장에 있는 놈들은 10㎏ 넘는 대(大)방어"라며 "가로·세로 30m에 깊이 10m인 양식장 한 칸에 1500마리가 들었다"고 했다. 차 대표는 "4㎏ 이하는 소방어, 7㎏ 이하면 중방어, 8㎏ 이상은 대방어"라고 했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1~3㎏이면 소(小), 3~5㎏ 중(中), 5~9㎏ 대(大), 9㎏ 이상이면 특대(特大)로 분류한다.

이곳 방어는 강원도에서 잡아온 놈들이다. 5~6월 대진항·묵호항 등에서 잡은 방어 수천 마리를 대형 활어 수송선에 실어온다. 5~8㎏쯤 나가던 방어는 양식장에서 먹이를 듬뿍 먹으며 대방어로 자란다. 과거 방어 어장은 제주도 인근이었지만, 지구온난화로 바다 수온이 상승하면서 최근에는 방어떼가 제주까지 내려가지 않아 강원도 동해에 형성되고 있다. 알에서 치어를 부화시켜 성어로 키우는 '방어 완전양식'은 지난 2017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했지만, 아직 완전양식을 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겨울에 잡히는 다 자란 방어도 통영 양식장을 거쳐 전국으로 출하된다. 더 키울 필요 없는 다 자란 방어도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통영으로 실어오는 이유는 뭘까. 차 대표는 "방어를 순치(馴致·길들이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방어는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잡히면 바로 죽어요. 자연산 방어는 4~5일 지나면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지 못해요. 양식장에서 일주일쯤 순치하면 10~20일 심지어 한 달도 살아 있을 거라고."

30여 분 만에 방어 밥 주기가 끝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금붕어 키우기와 비슷했다. 착각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졌다. 활어차가 차도선(車渡船)에 실려 다가와 양식장 한 면에 바싹 붙어 섰다. 양식장 크레인이 그물을 끌어올리자 방어 수백 마리가 퍼덕거렸다.

양식장 직원들이 커다란 뜰채로 방어를 한 마리씩 건져 활어차 수조로 옮겼다. 퍼덕거리는 방어가 담긴 뜰채를 들고 양식장 좁은 난간에 균형 잡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마리당 30만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생선이라 함부로 다룰 수도 없었다. 바다에 빠질 듯 위태위태 걷는 꼴을 보다 못한 정 대표가 "비키라"고 했다. 내가 걱정됐다기보단 값비싼 방어를 상처 입히거나 바다에 빠뜨릴까 불안했던 듯하다. 정 대표와 직원들은 한 시간여 동안 방어 25마리를 활어차에 실었다. 정 대표는 "그나마 오늘은 마릿수가 적어 덜 힘들었다"며 "활어차는 최대 100마리까지 실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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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척포항 앞바다 방어 양식장.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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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갈치·청어 등 생선을 갈아서 미니 소시지 크기로 빚은 방어 사료 '펠릿'.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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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별로 나눈 방어회.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등살·뱃살·꼬리살·위 뱃살·목살(가마살).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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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장' '마늘된장'에 찍어 먹어봐요

방어는 살부터 내장, 껍질, 대가리까지 버릴 게 없다. 방어회는 크게 등살·뱃살·배꼽살·목살(가마살)로 구분한다. 이렇게 부위별로 제대로 맛보려면 대방어는 돼야 한다.

등살은 척추뼈 윗부분에 있는 담백한 감칠맛이 감도는 부위로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돌면서 끄트머리에 붉은 살이 붙어 있기도 한다. 척추뼈 아래 뱃살은 하얗게 서리가 내린 듯 지방이 잔뜩 껴서 고소한 부위. 방어는 물론 생선이니 배꼽이 없지만 배꼽살은 있다. 배꼽살은 방어 뱃살 아랫부분의 내장을 감싸는 단단한 지방층으로, 씹으면 오독오독 기분 좋게 씹히다가 사르르 녹아내리는데 느끼하지 않다. 목살은 아가미와 지느러미 사이 아랫부분으로 뱃살만큼 고소하지만 씹는 맛이 더 탄탄하고, 꼬리살은 운동량이 가장 많은 부위답게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 기막히다.

이 외에 방어 한 마리에서 딱 2점 나오는 눈 주변에 붙은 눈살, 척추뼈에 붙어 있어서 숟가락으로 긁어 먹는 갈빗살, 껍질에서 발라낸 말랑말랑 젤리 같은 속껍질도 있다.

방어를 양식하는 분들이니 독특하게 먹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외로 차 대표와 정 대표 둘 다 "방어 잘 안 먹는다"고 했다. "비싼 생선인데 팔아야지 어찌 먹습니까? 워낙 커서 한 마리 잡으면 다 먹기도 힘들고요."

통영요리연구가인 이상희 '멍게가' 멍게요리전문점 대표는 "원래 통영에서는 방어를 먹지 않았다"며 "하지만 방어가 흔해지면서 차츰 먹는 방식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마늘된장'에 방어회를 잘 먹어요. 묽은 된장에 굵게 찧은 마늘을 섞은 거예요. 얼마 전 부산에 갔더니 '미나리장'이 방어회에 곁들여 나오더라고요. 잘게 썬 미나리를 초고추장과 섞는데, 미나리의 산뜻한 향과 아삭아삭한 식감이 기름진 방어회 맛을 잡아주더라고요. 전반적으로 맛이 강한 양념이 방어회와 어울리는 듯합니다."

방어는 12일 현재 이마트에서 240g짜리 1팩이 1만5800원에 팔리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평균 낙찰가는 강원도 동해 활(活)방어가 2만800원(1㎏), 통영 활방어는 1만7200원(1㎏)이다.

[통영=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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