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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KIA 윤석민 은퇴… 결국 부상에 발목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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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프로야구 KIA팬들이라면 양현종(31)과 윤석민(33)이 타이거즈 마운드의 좌우 원투펀치로 나서는 장면을 고대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부상에 시달리던 윤석민이 전격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KIA 구단은 윤석민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윤석민은 구단을 통해 “다시 마운드에 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재활로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생기도록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선수로 뛰면서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도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윤석민은 2005년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선발, 마무리, 중간계투 등 팀이 필요한 보직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활약하며 12시즌 통산 성적 77승75패, 86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29를 남겼다. 특히 2011년엔 다승(17승5패), 평균자책점(2.45), 탈삼진(178개), 승률(0.773) 타이틀을 휩쓸고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역대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개 타이틀을 한해에 독식한 KBO리그 투수는 선동열 전 야구 대표팀 전임 감독과 윤석민뿐이다. 그해 윤석민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도 안았다. 그가 상대 타선을 꽁꽁 묶었을 때는 KIA의 연고지인 광주와 댐을 합친 ‘광주댐’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4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지만 빅리그에 데뷔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다 2015년 다시 KIA로 돌아왔다. 친정 복귀 당시 4년 90억원이라는 FA 대형계약을 맺으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윤석민은 친정 복귀후 어깨 통증으로 전성기 기량을 잃고 재활에 몰두해야 했다. 2016년엔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도 받으며 부활에 안간힘을 썼지만, 이전의 구위를 회복할 수 없었다. 결국 윤석민은 2018년 10월12일 롯데전에서 세이브를 수확한 것을 끝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고 은퇴하게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 활약한 윤석민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대한민국이 9전 전승의 금메달 신화를 쓰는 데 앞장섰다. 또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금메달)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누볐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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