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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펀치볼이 '시래기 알바'로 유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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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59)



이제 얼추 겨울 김장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겨울을 맛있게 보내는 일이 남았기에 강원도로 발걸음을 옮겨 봤다. 강원도에서도 펀치볼이라 불리는 양구군 해안면이다. 양구에는 유명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두 개를 꼽으라면 박수근 화백과 시래기를 꼽는다. 겨울 된장국은 시래기를 넣고 끓여야 제맛이다. 무청을 말려 놨다가 국 끓일 때 물에 삶아서 불려서 먹는 시래기가 양구군의 명품이다. 시래기와 비슷한 것으로 우거지가 있다. 시래기와 우거지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청이나 배추 잎을 말리면 시래기고, 말리지 않고 삶아서 먹으면 우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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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나물, 죽 등으로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시래기. 농촌에서는 김장에 이어 겨울철 별미인 시래기 말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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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는 발음 때문에 느낌이 안 좋았다. 쓰레기와 비슷한 어감 탓에 손해를 봤다. 옛말에도 술 마시고 취해 건들거리면 ‘시래기’라고 했다. ‘시래기뭉치’는 못생긴 사람을 가리킨다. 물에서 건져 꽉 짜 뭉친 시래기가 볼품없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우거지도 마찬가지이다. 우거지상이라고 하는 데 있는 대로 인상 쓰고 찌푸린 모습을 뜻한다. 그리고 못생겼다는 뜻도 있다.

예전엔 대개 무청을 새끼로 엮어 보관해뒀다가 볶아 먹거나 국을 끓일 때 이용했다. 바람과 햇볕으로 말리기 위해 집집이 겨우내 시래기를 매달아 놓은 광경도 추억 속 ‘풍경화’다. 집집이 시래기가 널려 있는 모습이 흔했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이맘때부터 베란다에 시래기를 말리곤 했다. 얼마 전에 서울 아파트 베란다에 집집이 시래기가 있다길래 웬일인가 물어봤더니 에어컨 실외기란다.

좋은 시래기는 보통 고산 분지에서 재배되는데 높은 분지에서 자라면 제대로 된 풍미와 영양가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남한에서 이런 환경을 갖춘 곳이 많지는 않은데 최고로 치는 곳이 바로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이다. 모양이 그릇 같다고 해서 한국전쟁 시절에 미군이 ‘펀치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곳이 지금은 ‘시래기의 본고장’으로 불릴 정도로 우수한 품질의 시래기를 생산한다. 매년 10월 말에 펀치볼 시래기 축제도 한다. 온 마을이 시래기 천국이 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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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높은 강원도 양구군의 펀치볼 시래기 작목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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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시래기에 된장 풀어서 된장국을 많이 먹는다. 선조들은 먹거리가 부족했던 겨울에 시래기밥·시래기나물·시래기떡·시래기 지지미·시래기찌개 등 시래기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말린 시래기를 오래 푹 삶은 뒤 찬물에 우려내고 쌀뜨물·멸치·된장을 넣고 푹 끓인 시래깃국은 겨울 별미다.

통영에 가면 시락국이라고 파는 게 있다. 시락이 시래기다. 경상도 사투리다. 양구와 통영의 차이는 양구는 좋은 시래기를 식재료로 팔고, 통영은 좋은 시래기를 받아서 식당에서 메뉴로 판다는 것이다. 시래기는 영양소가 좋다. 바짝 말린 시래기엔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가 더 많이 들어 있다. 무보다 무청에 더 영양가가 높다.

무청이나 배추를 말리지 않으면 우거지고 푸성귀의 겉대도 우거지다. 우거지의 어원은 ‘웃걷이’라고 한다. 위와 겉을 뜻한다. 배추 같은 채소의 윗부분을 걷어낸 것을 가리킨다. 김장 김치나 젓갈의 맨 위에 덮여 있는 배추 잎도 우거지다. 우리 조상은 김장 김치를 장독에 보관할 때 우거지를 이용했다. 김장 김치가 쉬 상하거나 익지 않도록 장독 안에 김치를 담은 뒤 위에 소금을 충분히 뿌린다. 소금이 장독의 아래쪽으로 서서히 내려가면서 장독 윗부분에 있던 김치의 염도가 낮아지게 되는 효과가 있다. 또 장독 뚜껑을 여닫을 때마다 장독 윗부분의 김치는 공기와 접촉해서 오염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막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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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과 우거지가 어우러져 구수한 맛이 일품인 우거지해장국.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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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와 시래기는 오랫동안 밥상의 주인공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식감이 떨어지고 우수리로 얻을 만큼 흔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최근 영양소와 웰빙 성분이 재조명받으면서 귀한 재료가 되고 있다. 양구에 가면 그 넓은 펀치볼 땅이 모두 시래기를 말리는 하우스다. 그래서 양구에는 겨울철에 시내 주민들이 해안면 펀치불로 시래기 알바를 가는 풍경이 벌어진다.

푸대접받던 시래기가 이제야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 박수근 화백도 생전에 시래기를 즐겨 드셨을까? 사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박수근 화백은 분명 시래기를 잘 드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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