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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여의도풍향계] 고비마다 굶었다…정치권 단식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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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풍향계] 고비마다 굶었다…정치권 단식 투쟁사

[명품리포트 맥]

식음을 전폐하는 단식은 정치인들의 벼랑 끝 투쟁 카드 중 하나입니다.

정치적 고비마다 자신의 몸을 담보로 단식 카드를 꺼내들고는 하는데요.

대화와 협상의 길이 막혔거나 더 이상 합리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자신의 몸을 내던져 국면을 전환시켰습니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단식투쟁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오래됐으면서도 파장이 컸던 단식 투쟁은 1983년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을 했는데요.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에 금이 가게 만들었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단식투쟁으로 우리 정치의 물줄기를 바꿨습니다.

1990년 10월 평민당 총재이던 김 전 대통령은 당시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이 지방자치제 약속을 어기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자 단식에 돌입했는데요.

13일간 이어진 그의 단식투쟁은 끝내 지방자치제 도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목숨을 건 단식은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린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두 야당 지도자의 단식이 반독재 투쟁의 수단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단식투쟁은 특정 정책을 요구하거나 반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국민들이 명분 있는 단식투쟁이라고 받아들일 경우 단시간에 극적 효과를 내다보니 곳곳에서 단식이 이어졌습니다.

2003년 10월에는 집권 여당이었던 당시 열린우리당의 임종석 의원이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 반대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는데요.

집권 세력 내부에서도 단식 투쟁이 정치적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로 꼽힙니다.

그해 11월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최 전 대표는 17일간 곡기를 끊었는데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찾아가 굶으면 죽는다는 말을 남긴 일화는 아직까지 유명합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김근태, 천정배 의원 등 여권의 정치인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단식 투쟁을 벌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연합 대표시절 2014년 유민아빠로 불리는 김영오 씨 곁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간 동조단식을 벌였습니다.

<문재인 /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유민 아빠가 단식을 멈춰야 되는데 오늘이 44일째인가요? 그렇거든요. 어차피 한계에 이르렀으니까 오래가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12월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요구하며 12일간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손학규 / 바른미래당 대표> "선거법 개정이 되고 민주주의 발전에 계기가 된다면 그래 그렇게 하자. 내 몸 하나 바쳐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고 충격이 된다면…."

두 사람의 투쟁은 국회 정개특위 가동과 연동형 비례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 개혁안의 패스트트랙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단식으로 역풍을 맞거나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냉소적인 여론에 부딪치면서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6년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되자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을 벌였는데요.

<이정현 / 새누리당 대표> "거야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비상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직을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물타기를 시도한다는 비난 속에서 단식은 일주일 만에 끝났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는 단식 도중 의사당 앞에서 양갱을 건네며 접근하는 남성에게 턱을 가격당하는 봉변을 당했고, 올해 1월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을 반대하며 5시간 반씩 릴레이 단식 농성을 했는데, 간헐적 웰빙 단식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대전환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황 대표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황교안 / 자유한국당 대표> "국민 여러분의 삶,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막을 칠 수 없는 청와대 앞 광장에서 황 대표는 노숙도 불사하며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철회를 단식 해제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여당과의 타협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

단식투쟁은 우리 정치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투쟁 방식으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국민의 호응을 받으며 소기의 성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뀐 지금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단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예전 같지 않습니다.

당장 의사당에서 의정을 논의하는 상대 당 동료들부터 단식을 조롱 대상으로 삼아 깎아내리는 비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계점을 넘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 속에서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이미 역사의 변곡점을 지난 모양새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 연합뉴스TV 한지이였습니다. (hanj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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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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