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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천안문의 후예들, 2019년 서울에서 '중국 민주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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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 당국이 시위대 200여 명을 대거 '폭동죄'로 기소하고, 중국 공안이 홍콩 주재 영국 외교관을 감금해 고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어제. 서울에선 홍콩 민주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승만 독재 체제에 항거한 대학생들을 기리는 고려대 4.18 기념관 지하 2층엔 우리나라와 홍콩 대학생 외에도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은 중국 본토에서 온 유학생들이었습니다. 국내 언론에 중국 유학생들은 주로 홍콩 민주화 지지 대자보를 찢고, 표현의 자유에 테러를 일삼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중국 유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뜻밖에도 '중국 민주화'였습니다.

많게는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인에게 '민주화'를 입에 담는다는 건 본인은 물론 가족의 안위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조국에서 스스로의 정치 체제를 논할 수 없는 청년들. 그들은 어젯밤, 옆 나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중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타국에서 조국의 '민주주의'를 외친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먼 훗날 중국 인민들이 일어날 때, 홍콩은 우리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중국인 유학생 A 씨>

이 자리를 빌어 문명적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중국인 학생들을 대표해 사죄합니다.

홍콩 운동은 중국 본토 사람들의 지지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본토 학생들의 단결이 필요합니다. 중국 학생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홍콩의 독립, 다른 하나는 홍콩 시위대의 폭력입니다.

하지만 중국 매체와 해외 매체가 보도하는 내용의 차이 때문에 오해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오해를 깨트리고 싶습니다.

먼저 홍콩 독립입니다.

앞서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홍콩 시위의 목적은 독립이 아니라 민주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본토와 홍콩 사이에 관념적인 편차가 있습니다. 홍콩인이 말하는 독립은 사법과 정치 체계의 독립입니다.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독립이 아닙니다. 본토에서 '중국인'이라는 개념은 종족을 포함해 역사, 정치, 문화라는 융합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홍콩인과 대만인에게는 본토의 사람을 묘사하는 정치적인 단어일 뿐입니다. 문화, 종족, 역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홍콩인들이 자신이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 말하는 건 대립이 아닙니다. 단지 공산당이 통치하는 지역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중국 공산당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콩 독립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명제입니다. 대만이 독립적인 군대를 갖춘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국제법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홍콩에는 경찰대만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라고 해도 홍콩은 현실적으로 독립해서 국가를 건설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대륙 사람들은 일부 사람들의 말을 현실이라고 잘못 해석해버립니다. 그러므로 홍콩 독립은 대륙 사람들이 오해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폭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경찰과 군대는 체제가 있고 조직이 있고 책임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에는 명확한 리더가 없습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합니다. 그래서 단체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분 아주 폭력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전체를 잘못 봐서는 안 됩니다.

폭력을 사용하느냐 마느냐는 목표가 누구냐에 따라 다릅니다. 대한민국 정부나 미국 정부라면 사람들은 투표로 정부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폭력을 사용하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맞서서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김정은과 평화롭게 소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람들에게 돌려달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폭력은 유일하게 압력을 가하는 방법입니다. 폭력이 없으면 청나라가 엎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공산당도 정권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찰은 사회 치안을 지켜야 하지 정치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원한이 영원히 시민들 마음속에 남습니다.

홍콩이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도시 중에 하나로서, 서구의 영향을 100년 넘게 받았는데, 보통 선거를 요구하는 것이 어떠한 사치스러운 요구입니까?

대륙 사람들이 왜 홍콩인과 단결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단지 자기를 위해서 자유와 민주를 얻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토의 중국인 전체를 위해 자유와 민주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홍콩이 미래의 중국 전체가 될 것입니다.

청나라 말기 1900년에 중국에는 의화단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유행했던 구호가 있었는데, '양키 다 죽여 버려! 청나라가 통일되면 만년 넘게 이어질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년이 지나, 청나라는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언젠가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홍콩은 우리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중국인은 영원히 하나의 당 하나의 통치 아래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 "홍콩 시위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홍콩 민주화 운동이 궁금하다"

<중국인 유학생 B 씨>

토론 발제하신 홍콩 유학생께 묻습니다. 저는 홍콩 운동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홍콩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을 때 그들을 억압한 게 홍콩 경찰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여쭙습니다. 이번 홍콩 민주화 운동을 보면서 제가 4년, 5년 전 홍콩에서 똑같이 일어난 이른바 '우산혁명운동'을 떠올렸는데, 그 운동은 어떻게 끝났는지, 그 이후 홍콩 정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홍콩 유학생 C 씨>

우산 혁명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우산 혁명과 이번 민주화 운동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산 혁명은 행정장관을 1인 1표가 아니라 중국 정부와 정해진 위원들이 뽑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시위한 것입니다. 많은 홍콩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위에선 경찰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상하고 불만이 쌓이면서 시위가 커진 것 같습니다. 이번 운동이 언제 끝날지 생각해봤습니다. 처음에 6월부터 시위가 시작됐을 땐 저번 우산혁명처럼 한 달, 두 달 뒤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점 심해졌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와 교수님들이 저에게 제보한 적도 있어서 주말마다 많이 걱정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어도 주말을 행복하게 보낼 수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얼마나 희생이 더 필요한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시위대는 학생들인데, 학생들은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고 할 때에도 시위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홍콩에서 대학 다닐 땐 콘서트도 가고 그랬는데 그 친구들은 시위에 간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계속 많이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 서울, 2019년 겨울

어제 토론회에서 중국과 홍콩 대학생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2016년의 '촛불혁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사를 접한 뒤 이 책을 주변 친구들과 공유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952년 이승만 정권이 발췌개헌을 했을 때, 한 외신 기자는 "남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도 같다"고 평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로부터 67년 뒤, 한국의 서울은 권위주의 체제하에 살고 있는 동아시아의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사상의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장이 됐습니다.

다시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서울에서 사상과 체제의 자유를 논했던 이들은 스스로의 조국에서도 자유롭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게 될까요? 그리고 그때, 봄을 꿈꿨던 이들은 2019년 서울에서의 겨울을 어떤 의미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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