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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현장에서] 대통령 감성 돋보인 ‘좋은 쇼’ 국민 궁금한 건 못들은 ‘나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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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무작위 선정했다지만

19명 중 5명이 대통령과 구면

박지원 “탁현민 빈자리 크구나”

중앙일보

문 대통령과 인연이 있거나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질문자들. 왼쪽부터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 사킵 부부, 자영업자 고성일씨, 로커 출신 장애인 김혁건씨, 개성공단 입주 기업 사장 이희건씨. [사진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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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뒤를 자주 돌아봤다. 질문자가 문 대통령의 등 쪽에 있어 눈을 맞추기 위해선 그래야 했다. 이른바 ‘국민 패널’ 중 한 명이 자신이 3남1녀 중 차남인 사실까지 말하며 5분가량 중언부언할 때도, 일용직 노동자인 한 패널이 청와대의 박모 국장을 언급하며 불만을 얘기할 때도 문 대통령은 표정을 찡긋조차 안 했다. 117분 내내 귀 기울여 들었고, 차분히 말했고, 자연스럽게 웃었다. 행사 종료 후엔 쏟아지는 ‘셀카’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문 대통령은 평소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강점”(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이재국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는 특유의 개성이 발휘됐다. 지지층 입장에선 “국민을 대하는 대통령님의 태도 그 진짜 마음에 내내 울렁거립니다”(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라고 할 만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아 19일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는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따뜻한 사람’ 문재인과 그를 좋아하는(것으로 보이는) ‘국민 패널’이 연출한 한 편의 좋은 쇼였지만, 지지그룹 내에서도 “도떼기시장”(방송인 김어준)이란 평가가 나온 나쁜 소통의 장이었다.

5개 방송사를 통해 중계된 ‘국민과의 대화’ 시청률이 국민 5명 중 한 명꼴인 22%였다니 1000만 명 정도가 TV 앞에 앉은 셈이다. 실제로 국민은 듣고 싶은 말이 많았을 거다. 학부모들은 불과 며칠 전에 끝난 수능과 관련해 향후 입시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특목고는 왜 없애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을 테다. 무주택자들은 문 대통령이 “부동산 자신 있다”고 했는데, 그 자신감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을 테다. 트럼프를 걱정하는 이는 한·미 동맹은 정말 굳건한 것인지 묻고 싶었을 테고, 80년의 광주를 기억하는 이는 2019년의 홍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을 테다. 이런 장면은 없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나 검찰 개혁, 남북 이슈 등의 주요 현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일부 있었다. 하지만 ‘질문→답변→재질문→추가 답변’의 과정이 없어 이슈를 따져 묻지 못했고, 문 대통령의 답변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 많았다.

국민 패널 선정도 특정한 의도가 있었거나, 적어도 모종의 미필적 고의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국민과의 대화 직전 주관사 MBC는 라디오 생방송(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패널 선정은 무작위”라고 했다. 이날 질문자는 두 쌍의 부부 포함, 총 19명이었는데 이 중 5명이 문 대통령과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26%꼴이니 ‘무작위’라기엔 무색한 수치다. 질문자 중엔 페미니스트·성소수자·탈북민·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인물상이 나왔는데, 정작 문 대통령의 핵심 이탈 지지층인 2030 남성을 대변하는 이는 없었다.

행사 후 “내가 청와대에 있었다면 ‘국민과의 대화’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탁 전 행정관의 탁견이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시작한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등을 맡으며 행사에 관여했던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탁 전 행정관 빈자리가 저렇게 크다고 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고,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진행자였던 배철수씨가 “이런 진행은 처음인데 3년은 늙은 것 같다”고 한 것을 빗대 “(국민과의 대화를) 보는 우리도 3년 늙었다”고 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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