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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세월호 책임지고 캔다는 윤석열, '우병우 사단' 특수단장 앉힌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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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쓰는 심정으로 제기된 모든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13층 소회의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 출범에 맞춰 언론 앞에 선 임관혁(53·사법연수원 26기) 특수단장의 각오에서 결기가 느껴졌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꼬박 5년 7개월이 흐른 시점에 검찰은 '세월호 전면 재수사'를 선언했다.

하지만 임 단장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재수사에 대한 시선은 여러 지점으로 갈린다. 우선 검찰이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착수로 등을 돌린 여권과 관계 회복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일각에선 이번 수사를 통해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권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똬리를 튼다. 어찌 됐든 검찰의 이번 판단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란 전제가 공통으로 깔려있다.

그렇다면 과연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제기된 모든 의혹을 백서에 담을 정도로 명쾌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수사 의지는 얼마나 있을까. 정치적 고려는 없는 것인가. 연달아 제기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선, 우선 세월호 전면 재수사 결정이 진행된 검찰 내부 판단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①윤석열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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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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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의 결단입니다."

대검의 한 관계자에게 세월호 특수단 출범 배경을 묻자 돌아온 간략하고도 명쾌한 대답이다. 세월호 재수사는 윤 총장의 지론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윤 총장은 사석에서 "아이들 수백명이 희생됐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해경 정장 한명 뿐인 게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검찰총장이 된 뒤엔 수사를 지시할 권한도 생겼다. 앞서 2017년 말 제정된 '사회적 참사 특별법'에 따르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고발 또는 수사 요청한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은 수사 검사를 지명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와 대검 국정감사에서 박주민·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달아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수사 의지는 있었다. 명분도 생겼다. 문제는 시점이다.



②왜 하필 지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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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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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특수단 출범에 대해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검찰은 세월호 특수단 설치를 지난 6일 발표했다. 윤 총장이 참석하는 청와대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이틀 앞둔 시점이다. 반부패정책협의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했다.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이날 만남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처음이라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검찰의 특수단 설치 발표에 대해 한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청와대에 빈손으로 가기 좀 그렇지 않으냐"는 한 줄 평을 내놨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착수 이후 검찰에 등을 돌린 여권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카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뜻은 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기도 하다.

검찰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 이른바 '검찰개혁'에 박차를 걸자 이를 만회할 방안이 검찰로선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수단의 정식 명칭은 '특별수사단'이다. 특수단은 대부분 특별수사 경험을 갖춘 검사로 꾸려졌다. 검찰 내부에서 "특수부를 축소하자 특수단이 생겼다"는 자조가 나오는 반면, 특별수사 축소를 주장하던 여권은 세월호 특수단 설치에 대해 거꾸로 '환영' 입장을 내놨다.

특수단 출범 브리핑에서 임 단장이 "현재로써는 수사 기간을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당장 5개월 뒤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다. 검찰 칼끝이 세월호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향할 경우 총선을 앞둔 정국의 돌발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하지만 검찰 설명은 다르다. 검찰도 특수단 설치 발표 시점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윤 총장이 청와대에 다녀온 뒤 특수단 설치를 발표할 경우 '하명수사' 논란이 일 것을 대검 참모들이 굉장히 우려했다"며 "하명수사란 이야기가 듣기 싫어 오히려 청와대 방문 전에 발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총장 취임 직후엔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 검찰이 세월호 재수사 착수 타이밍을 한차례 놓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③'우병우 사단'을 특수단장에 앉힌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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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소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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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책임자에 임 단장이 선임된 것을 두고도 여러 뒷말이 나온다. 그는 검찰 내 '우병우 사단'으로 꼽힌다. 임 단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평검사로 함께 일했다. 이런 인연으로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과 특수1부장을 연임했다는 소문이 검찰에 맴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참사 당시 윤대진(현 수원지검장) 광주지검 형사2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 중단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세월호 수사 축소·외압 의혹 일기도 했다. 임 단장이 세월호 재수사를 책임진 이상 '백서'를 쓰려면 우 전 수석과 한번은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검찰 내부에서도 임 단장을 선임하기 전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대검 참모들은 "'우병우 사단'이란 꼬리표 때문에 자칫 세월호 재수사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윤 총장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내가 책임진다"며 임 단장을 특수단장에 앉힌 것으로 전해졌다.



④"가장 지독한 검사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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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5년여 만에 대검찰청 산하에 꾸려진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맨 오른쪽)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소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특수단 출범 각오와 입장 등을 밝힌 뒤 조대호 대검찰청 인권수사자문관(맨 왼쪽), 부장검사로 합류한 용성진 청주지검 영동지청장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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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임지겠다"던 윤 총장의 특수단 구성 원칙은 무엇이었을까. 한 대검 관계자는 "가장 수사를 잘하는 사람"이란 기준 외에 다른 고려사항은 없었다고 전했다.

대검이 임 단장 선임에 앞서 우선 고민했던 부분은 세월호 재수사를 담당할 수사 인력 규모였다고 한다. 차장검사를 단장으로 하는 '수사단'으로 할지,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수사팀'으로 꾸릴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수사팀으로 꾸릴 경우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수사를 벌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다만 수사팀장이 부장급이라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등 외부에서 볼 때 수사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단으로 꾸릴 경우 수사 인력도 상대적으로 늘고 대검의 지휘를 받는 모양새가 갖춰져 검찰의 수사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남은 문제는 수사를 책임질 특수단장에 적임자를 앉히는 일이었다.

윤 총장과 대검 참모들은 하나의 기준, "가장 수사를 지독하게 할 사람"을 골랐다고 한다. 그가 바로 임 단장이다. 결정하고 보니 공교롭게도 임 단장이 안산 단원고를 관할로 하는 안산지청장이었다.

임 단장을 보필하며 직접 수사를 담당할 용성진(44·33기) 부장검사도 같은 기준으로 선발됐다. 윤 총장은 용 부장의 특수단 합류를 거론하며 "과거에 상부 허락도 없이 압수수색에 나섰던 검사"라고 언급했다. 당시 상관이 "왜 그랬냐"고 물으니 "물어봤으면 수사 못 하게 했을 것 아니냐"는 '맹랑한' 대답을 내놨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팀장을 맡았을 당시 국정원 직원의 체포영장과 관련해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천돼 수년간 한직을 맴돌았다. 윤 총장은 용 부장을 보며 자신의 과거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11일 출범한 특수단은 아직까진 잠잠하다. 출범 나흘 뒤 특수단은 특조위 관계자들과 첫 면담을 갖고 ▶고(故) 임경빈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 ▶내 영상저장장치(DVR) 조작 의혹 ▶청해진 해운 대상 산업은행 불법 대출 의혹 등 특조위가 수사 의뢰한 사건을 우선으로 수사하는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참사 구조 책임 및 수사 무마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해달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 대표 등 당시 정부 고위관계자 40명을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사 시작부터 결과까지, 책임은 고스란히 윤 총장의 몫이 됐다. 검찰이 써내려갈 '백서' 내용이 벌써 궁금하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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