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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에 신음하는데…“대박 났다” 환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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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돼지열병 비극과 테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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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도 돈이 되는 시대는 치사율 100%의 감염병도 사고팔았다.

■ 급등 “수익 축하드립니다.”

“님도 빅수익 축축축.”

9월18일 오전 11시20분 온라인 주식 리딩방(회원들에게 주식 흐름을 읽어주는 포털 카페나 에스엔에스 대화방) ㄱ에서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는 인사가 오갔다. 한 회원이 이틀 동안 단타 투자한 종목들의 손익률을 올렸다.

“9월17일 +17.09%, +13.28%…. 9월18일 +35.24%, +63.87%, +54.57%…. 일요일에 뉴스 주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씩 담았더니 수익이~. 쌤 감사합니다. 쌤과 함께하면 계좌가 변해요, 붉게붉게(붉은색으로 찍히는 매매 수익).”

방을 이끌며 정보를 준 ‘쌤’이 답글을 달았다.

“와, 부자 모드 ㅋㅋㅋ.”

축산농가엔 재앙 몰아치는데

발병 기다린 테마주 세력 환호

찌라시 정보로 주가 올리고

대화방선 서로 “빅수익 축하”


리딩방 ㄱ에서 축하가 넘치고 있을 때 경기도 파주의 돼지 축산농 정치상(가명·73)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의 허름한 단칸집 좁은 마당에 컨테이너 통제 초소가 들어섰다. 이날 아침 7시 연천군 백학면의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하 돼지열병)이 확진됐다. 전날 파주에 이어 두번째 발병이었다. 정부는 파주·연천 등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양돈농가 입구에 초소를 설치했다. 공무원과 경찰이 배치돼 하루 3교대로 지켰다. 한 차례 확진 때마다 정치상의 외출이 이틀씩 금지됐다.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그의 동네(법원읍)는 군부대 4개에 둘러싸인 곳이다. 남북 대치를 끌어안은 마을에서 통제와 긴장을 일상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돼지열병이 마당 깊숙이 밀어 넣은 통제와 긴장은 축산농으로 늙어온 정치상의 전 생애를 흔들었다. 그가 집에 갇혀 언제 마을에 닿을지 모르는 재난에 떨고 있을 때 ㄱ에선 돼지열병 테마주의 “대박 수익”을 알리는 쌤의 글이 게시됐다.

9월18일 오전 11시15분 “난리죠? … 언젠간 넘어온다, 바닥권(낮은 주가)에서 잘 잡아두셔라, 우리나라만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중국 보따리 상인들이 이미 중국 식품 반입하고 버젓이 판매되고 있고, 터져도 터질 것이라고 언급해드렸고 … 결국 터지면서 시세가 나줬네요.”

돼지열병의 접근에 마음 졸여온 정치상과는 반대로 그 병이 중국을 휩쓸 때부터 바이러스의 한국행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치료제 없는 감염병의 공포가 전국의 돼지 농가를 덮치자 그 공포를 테마로 팔아 이익을 얻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 돼지열병을 기다린 사람들 “북한 전역 감염 발표 속보. 남한에 하나 나오면 바로 점상(상한가로 시작한 주가 차트가 일자로 점을 찍으며 상한가로 마감).”

6월12일 북한이 돼지열병 발병 사실을 공표했다. 텔레그램 ‘찌라시’(증권가 정보) 채널 ㄴ(회원 6천여명)은 속보를 올리며 소독제 업체 주식을 추천했다. 남한 발병과 동시에 폭등할 테니 저점에 있을 때 사서 차익을 챙기라고 주문했다.

“북한 전역 퍼지는 데 며칠 안 걸렸습니다. 남한도 준비는 해야 할 듯. 나오면 바로 급등해서 개미는 잡을 수가 없어요.”

중국 여행객이 국내로 반입한 순대·만두에서 돼지열병 유전자가 검출된 지난해 8월부터 ㄴ은 “한국 발생 초임박”을 예고하며 온갖 ‘관련주’를 띄웠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날’. 장 개시 30분 전 ㄴ이 ‘기다리던 속보’를 올렸다.

9월17일 오전 8시32분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첫 발병 1보.”

문장 몇 개를 보탰다.

“관련주 급등 축하합니다. 오늘도 잘 골라서 크게 드세요.”

9월17일 새벽 6시30분 경기도 파주 연다산동 농장이 국내 처음으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검역 당국은 이 농장 등에서 돼지 3950마리를 살처분했다. 돼지열병 위기경보도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어미 돼지 5마리가 폐사해 원인을 확인 중입니다.”

전날 저녁 정치상은 관내 농장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됐다는 파주시의 연락을 받았다. 석 달 전 돼지열병이 북한까지 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제발 남쪽으론 내려오지 말라’고 빌었다. 공항과 항만을 통한 전염이 아닐 경우 북한과 맞닿은 파주가 첫 피해 지역이 될 수 있다고 그와 축산농가들은 우려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날이 밝았는데 연다산동의 확진 소식이 전해졌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농장과 그의 농장은 직선거리로 25㎞ 떨어져 있다. 정치상은 하루 두 차례씩 축사를 소독했다.

9월17일 오전 9시 주가 이상급등이 한국거래소 사이버분석팀에 관찰됐다. 돼지열병 테마로 묶인 종목들의 주가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개장 시각에 열린 정부 기자회견(첫 확진 발표)이 뉴스를 타면서 주가가 치솟았다. 발병 소식이 뜨자마자 주가가 활활 타올랐다. “서둘러 수혜주를 찾으라”는 글들이 포털 게시판과 에스엔에스 등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해당 업체에서 소정의 홍보비를 받고 작성되었다”는 문구를 붙인 채 종목 추천이 이뤄지기도 했다. 거래소 사이버분석팀은 오후 3시30분 장 마감 뒤 테마주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했다. 이튿날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시장 특이사항 보고’를 작성했다.

국내 발생 전부터 테마 띄우기

대체육·동물의약품·사료주까지

발병 1보에 관련주 활활 타올라

개인도 기업도 차익 챙기고 빠져


종가 기준으로 24개 종목(돼지고기 3개사, 대체육 3개사, 동물의약품 9개사, 사료 8개사, 방역 1개사)이 돼지열병 테마주로 분류됐다. 그중 20개 종목의 주가가 전날 대비 10% 이상 뛰었고, 14개 종목은 20% 이상 상승했다. 상한가를 친 종목만 10개였다. 일일 상승 제한폭 30%를 꽉 채운 이글벳(동물의약품 분야)의 시가총액은 하루 새 239억원 불었다. 테마에 달려든 초단기 투자자들이 몰리며 주가를 밀어올렸다.

닭·오리 등 대체육 종목에서 시작해 동물의약품·사료·방역 쪽으로 테마군이 확대되고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맞물리자 리딩방과 찌라시 채널들은 엮을 수 있는 모든 종목들을 돼지열병 테마로 끌어들였다.

■ 비극을 먹다 “만세입니다.”

9월20일 찌라시 채널 ㄴ이 ‘경기 파주 농가 2곳에서 돼지열병 의심 신고’ 속보를 전했다. 양성 판정(결과는 모두 음성)을 받으면 사흘 만에 추가 확진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잔반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나오자 ㄴ은 사료 종목을 밀며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주가 상승에 환호했다.

당신의 눈물이 나의 기쁨이 되는 시장이 있었다. 이 시장에서 “인간의 욕심이 테마로 포장”(한 투자자문사 대표)돼 사고팔렸다. 테마주 거래는 사업 실적이나 기업 가치에 근거한 매수·매도가 아니었다. “단기 수익을 내려는 투자자들과 그들을 이용해 주가를 띄우고 차익을 보려는 세력, 주식장사를 하려는 일부 기업들의 이해가 물려 테마의 세계는 작동”했다. 테마 시장에 금기란 없었다. 돈이 된다 싶으면 재앙과 불행도 어김없이 테마로 빨아들였다. 천재지변이든 사회적 참사든 예외 없이 베팅했다.

불행을 먹고 크는 ‘이상한 세상’

반려동물 치료제를 백신인 양

뉴스 왜곡·짜깁기로 매수 ‘유혹’도

농민 망해도 대기업은 몸집 키워


“지진 장난 아니네요. 저도 심하게 흔들렸어요.”

2017년 11월15일 오후 2시34분 ㄴ 운영자는 자신이 감각한 지진 진동을 전했다. 포항 지진 발생(오후 2시29분31초, 규모 5.4) 5분 만에 ㄴ은 내진설계 분야 종목을 찾아 ‘지진 테마’를 돌렸다. 진앙으로부터 45㎞ 떨어진 월성원전에서 지진 감지 경보가 발생했다는 ‘무서운 뉴스’가 나왔을 땐 “신재생에너지 탈원전 관련주”를 띄웠다. 지난 4월 초대형 산불이 강원도 고성을 태운 이튿날(5일)에도 ㄴ은 “초비상”이라며 화재감지 시스템 개발 업체의 주식을 권했다. 비극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참사 직후엔 안전 관련주가, 인양이 논의되던 시점엔 선박인양 관련주가 테마로 돌았다.

9월23일 “새끼를 낳은 어미 돼지가 밥을 안 먹더니….”

김포 통진읍(3차), 파주 적성면(4차), 인천 강화 송해면(5차)에서 한꺼번에 확진 농가가 나왔다. 각각 2100여마리, 2300여마리, 400여마리의 돼지들이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전국 네번째 확진 농장이자 파주 두번째 발병 농장의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보랏빛 반점을 띤 채 죽어버렸어요.”

통화를 마친 정치상의 두려움은 훨씬 생생해졌다. 4차 발병 농장과 그의 농장과는 7㎞ 거리였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강도처럼 재앙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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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의 원리 “대박은 여기서.”

지난해 8월27일(중국에서 반입된 가공식품에서 유전자 검출) 한 사료주를 추천하며 ㄴ이 테마의 속성을 설명했다.

“○○사료는 바닥이라 떨어질 곳이 없고 대신 일정주로 발표 터지면 그냥 (상한가로) 날아가는 거임.”

테마주는 ‘가치주’가 아니어야 했다. 테마가 일으키는 ‘급등’은 시가총액이 작고 주식 유통량이 적은 종목에서 나왔다. 사업 실적이 좋지 않고 주가가 저점에 있는 업체가 테마 세력의 타깃이 됐다. “사업을 잘하는 회사여선 안 된다. 회사 가치를 보고 투자한 사람들이 붙어 있는 상태에선 아무리 테마로 띄워도 ‘대박’은 날 수 없다.”(기업 투자 컨설턴트이자 찌라시 채널 운영자 배경헌·가명)

ㄴ은 돼지열병 확산의 모든 단계마다 바닥 종목들을 훑으며 테마를 ‘제조’했다. 돼지고기의 대안은 미국산 쇠고기뿐이라며 쇠고기 수입 업체(2018년 8월27일)를 올리고, ‘중국산 돼지고기를 먹어서인지 머리가 아프다’더니 중국 돈육 가공회사(4월18일)를 추천했다. 국내 발병 뒤 잔반사용 금지가 강화됐을 땐 사료주(9월19일)를 띄웠고, 매몰지 침출수 문제가 제기되자 상하수 배관 업체(10월4일)를 밀었다.

체시스 주가도 이 메커니즘을 따라 테마주로 돌고 돌며 초급등했다. 체시스는 자동차 부품(바퀴축) 회사다. 돼지열병과 무관한 이 회사의 계열사(넬바이오텍)가 동물의약품·사료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테마주가 됐다. 체시스는 지난 4년간 당기순이익이 줄곧 마이너스인 적자기업이다. 국내 첫 확진 당일 주가가 29.82%(주당 1660원→2155원) 솟구치며 상한가를 치더니 다음날까지 이틀 연속 상한가(2800원)로 마감했다.

돼지열병 테마를 지켜보던 한국거래소는 9월19일 체시스를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9월20일 ‘투자경고’ 종목이 되고도 주가가 꺾이지 않자 거래소는 9월24일 하루 거래 정지(투자경고에도 이틀간 40% 이상 급등) 조처를 했다. 9월25일엔 ‘투자위험’ 지정 예고 단계(‘예고’에도 냉각되지 않을 땐 거래 정지)까지 갔다. 최고 종가를 찍은 이날 체시스의 시가총액(1150억원)은 돼지열병 최초 발병 전날(9월16일 398억원)의 2.8배였다.

거래소는 체시스 주가 상승에 깊이 관여한 계좌들을 찾아냈다. 9월18일 하루 거래량(37만여주)의 31.54%(11만6천주)를 20개 계좌가 매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개 중 가장 많은 주식을 산 상위 3개 계좌는 모두 개인이었다. 각각 4.96%(1만8천여주), 4.83%(1만7천여주), 1.46%(5천여주)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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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라시의 유혹 “저주받은 땅.”

양돈농가에 파주는 그랬다. 2000년 한국 최초의 구제역 발병지가 파주였고 2010년 구제역 대란 때 피해가 가장 큰 지역도 파주였다. 2010년 정치상의 농장에도 구제역이 들이닥쳤다. 그의 돼지 75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포클레인이 농장 뒤에 구덩이를 파고 돼지들을 산 채로 묻었다. 살겠다며 도망가는 돼지들을 그가 직접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9년 만에 닥친 훨씬 강력한 질병 앞에서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치상은 매달 25일 돼지를 도축해 군대에 납품했다. 9월25일 그의 돼지는 출하되지 못했다.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강화에서만 4차례 추가 발병했다.

9월17일 낮 12시45분 “단독·최초제보. 아프리카돼지열병 전염 매개체는 바로 진드기.”

ㄴ이 “천연물 진드기 제거제 출시”란 찌라시를 뿌리며 동물의약품 업체를 추천했다. 투자를 유도하며 근거로 제공하는 정보가 찌라시였다. 근래 찌라시들은 ‘믿을 수 있는 정보’란 인상을 주기 위해 뉴스를 소스로 삼았다. ‘최초제보’라며 ㄴ이 첨부한 링크는 1년5개월 전의 기사로 연결됐다. 돼지열병을 퍼뜨리는 물렁진드기 제거제 출시 소식처럼 보였으나 알고 보니 집먼지진드기를 잡는 제품이었다.

ㄴ의 찌라시는 여러 기사를 짜깁기해 왜곡한 뉴스들이 적지 않았다. 북한에서 확진 사실이 알려진 날 ㄴ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A사, B사와 신약개발 양해각서 체결”을 타전했다. 두 회사가 돼지열병 백신 개발에 협력하는 듯 읽혔지만 실제 개발하는 약품은 반려동물 치료제였다.

찌라시계에서도 ㄴ은 “악성”(배경헌)으로 통했다. “악성 채널의 경우 중요한 것은 정보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정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 주가를 밀어올리느냐”였다. ㄴ이 퍼뜨리는 찌라시들은 대부분 ‘세계 최초’ ‘전국 최초’ ‘최초 입수’ 등으로 시작했다. “아직 소문 전”이라며 주가 상승 전에 서둘러 사라는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매수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배경헌)이었다. “어떤 찌라시 운영자들은 자신이 미리 사둔 주식을 띄우기 위해 찌라시를 돌리거나 띄울 주식을 사면서 돌렸”다. “찌라시에 반응한 개인 투자자들이 뛰어들어 주가가 올라가면 운영자는 고점에서 팔아 수익을 챙기고 빠져나왔”다. 제때 빠지지 못한 사람들이 떨어진 주가의 피해를 뒤집어썼다.

찌라시의 유통 경로도 “진화”(한국거래소 관계자)했다.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오픈형 게시판(포털 주식카페·블로그 등)에서 점차 개인을 일대일로 파고드는 폐쇄형(에스엔에스 대화방이나 개인 휴대전화 대량문자)으로” 옮겨갔다. “대량문자 발송자를 추적하면 사용자를 알 수 없는 대포폰으로 확인”됐다.

10월1·2일 파주시 파평면(10차)·적성면(11차)·문산읍(12차)과 김포 통진읍(13차)에서 확진이 속출했다. 파주 세 지역은 정치상이 사는 법원읍을 양쪽에서 둘러쌌다. 돼지열병이 근처까지 접근하자 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10월3일 파주시 전체 돼지농가에 살처분 명령이 떨어졌다. 발병 농가 반경 3㎞ 안의 돼지를 없애던 방침을 넘어 도시 전체의 돼지를 모조리 제거하는 극약 처방이었다. 나흘의 시간이 주어졌다. 정치상은 아득해졌다.

“제발 오지 마라” 비는 28년 축산농

돼지열병은 25㎞, 7㎞ 좁혀 왔다

사람 외출금지, 돼지 출하금지

9년 전에도 750마리 묻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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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정상 기업들도 돼지열병이 부양한 주가 상승을 놓치지 않고 이익을 실현했다. 주가가 치솟자 체시스의 최대주주 아들은 9월19일 주식 55만9천주를 전량 매도했다. 18억7천여만원어치였다.

닭고기 브랜드 마니커의 최대주주 이지바이오는 981만여주를 처분했다. 첫 발병일에 29.87%가 뛰어 상한가(1100원)를 친 마니커 주가는 9월24일(1525원)과 25일(1565원)에 최고점에 달했다. 이 이틀간 이지바이오는 151억여원을 현금화했다. 마니커 2대 주주 씨제이제일제당도 보유 주식 전량(1633만여주)을 팔았다. 198억여원어치로 추정됐다. 지난해 6월 마니커에 140억원(주당 857원)을 투자했던 제일제당은 1년4개월 만에 41%의 고수익을 냈다.

죽순처럼 자라던 마니커의 주가 곡선은 이지바이오의 대량 매도 다음날(1410원)부터 고꾸라졌다. ‘테마주로 묶인 기업의 주가 상승→ 최대주주의 차익 실현(테마주로 묶이길 원치 않는 대주주가 테마 세력을 쫓아내기 위한 조처로 보는 시각도)→ 주가 하락→ 뒤늦게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 피해’는 테마 시장에서 익숙한 풍경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테마를 뿌려 주가를 띄우고 먼저 터는 쪽이 이익을 먹는 구조”(한 투자자문사 대표)였다.

대기업 이지바이오는 농축산·육가공·사료·생명공학을 수직계열화했다. 돼지열병으로 돼지가 죽고 농가가 휘청거릴 때 축산 대기업은 주가 상승의 혜택을 보는 현상은 이 세계가 허락한 정상 시스템이었다. 누군가의 비극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정상’이 이 세계에 있었다.

10월8일 정치상은 살처분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돼지 없는 파주’를 위한 전 농가 살처분 완료 시한을 넘겼다. 온 힘을 다해 바이러스의 접근을 막으며 농장을 지켰던 정치상은 화가 치밀었다. 서명을 거부하는 그를 공무원들이 매일 찾아와 설득했다. 정치상은 시청에 들어가 항의했다. “어떻게 양돈인의 운명을 양돈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결정하냐”며 마시던 물컵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10월11일 “주말 난리 날 듯.”

ㄴ이 “연천서 돼지열병 의심 야생 멧돼지 발견”을 전하며 방역 관련주를 띄웠다. 14차 발병(10월9일 연천 신서면) 뒤 추가 확진 뉴스가 들리지 않는 중에 나온 멧돼지 감염 소식을 ㄴ은 놓치지 않았다.

10월13일 “당신들이 무슨 죄겠소.”

공무원에게 동의서를 건네며 정치상의 눈에 끝내 눈물이 맺혔다. “나 한 명 때문에 파주의 살처분 완료가 지연되고 있다는 부담”에 그도 결국 서명했다. 그는 ‘파주 전체 살처분’에 마지막으로 동의한 양돈농이었다. 이날부터 정부는 야생 멧돼지 총기 포획을 시작했다. 민통선 안 멧돼지 사체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잇따라 검출됐다는 이유였다.

10월19일 수매팀이 돼지들의 무게를 달았다. 9년 전 구제역 살처분 뒤 그는 임신돈 100마리를 재입식했다. 그중 47마리가 도태됐고 남은 53마리가 돼지열병 사태 전까지 새끼 430여마리를 낳았다. 수매팀이 90㎏ 넘는 220여마리만 트럭에 실었다. 수매 등급을 받을 만큼 살을 찌우지 못한 90㎏ 미만의 돼지들과 새끼를 낳으며 고기가 질겨진 어미 돼지 260여마리는 축사에 남았다. 그들은 이튿날 모두 살처분됐다.

“짐승도 끌려갈 땐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치상이 배를 긁어줄 때마다 드러누워 다리를 들던 새끼 돼지들이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울부짖었다. 고기로 팔기 위해 길러온 돼지들이지만 고기가 되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돼지들을 보며 그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인간이 짐승 중에서 가장 못된 짐승인 것을….”

정치상의 돼지들이 살처분되면서 파주에서 돼지가 말갛게 사라졌다. 그의 돼지들을 끝으로 파주 61개 농장의 돼지 4만8천여마리가 모두 땅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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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한 원리 “육계·사료. 경기도 연천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신고 등에 상승.”

10월17일 텔레그램 주식 정보방 ㄷ에 오랜만에 돼지열병 소식이 떴다. 전날 의심 신고 한 건이 접수(음성 판정)됐다. 916원(15일)이던 마니커 주가는 이 소식에 982원(16일)으로 반짝 반등했다.

테마가 쓸고 지나간 자리는 황량했다. 더는 추가 확진이 없자 날뛰던 주가가 최초 발병 이전 상태로 복귀했다. 9월25일 1705원까지 솟구쳤던 마니커 주가는 11월8일 864원으로 가라앉았다. ‘자극’ 없이 주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돼지열병 한 건 정도의 확진은 시장에서 식상해지고 먹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발생지인 경기도 북부에서 강원도나 충청도로 퍼진다면 잠깐 수급이 들어올 수 있겠지만….”

포털사이트 리딩방 ㄹ은 전국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추가 발병이 아니면 돼지열병 테마로 수익을 내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비극을 팔아 수익을 낸 시장에서 계속 돈을 벌려면 더욱 강력한 비극이 필요하다는 가혹한 원리가 회원들에게 ‘교육’됐다.

10월23일 정치상의 집 마당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철수했다.

살처분 농가의 피해를 ‘원칙적으로 100% 보상하겠다’고 정부가 일주일 전(10월15일) 발표했다. 수입이 다시 생길 때(살처분 뒤 3~6개월)까지 생계비 지원 방침도 내놨다. 그 기간 안에 수입이 돌아올 리 없었다. 돼지열병의 전파력을 우려해 ‘돼지 없는 도시’를 만든 만큼 향후 몇년간은 재입식이 불가능할 것이란 불안이 양돈농가를 감쌌다.

대규모 살처분이 지나가면 영세 축산농가들은 대기업으로 흡수됐다. 2010년 구제역 전까지 파주에 대기업 위탁 농장은 한 곳도 없었다. 그해 살처분 뒤 적지 않은 농장들이 대기업의 위탁농(사육 대행)으로 전락했다.

파주 전체 농가에 살처분 명령

“왜 일방통보냐” 항의도 잠시

남은 건 텅빈 축사와 빚더미

“어디서부터 부도가 난 걸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정치상은 텅 빈 축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돼지 대신 돼지가 남긴 냄새와 돼지가 떠난 뒤의 적막만 축사에 가득했다. 방제용 생석회(생산업체 백광소재 주가 9월16일 3865원→9월24일 7070원)를 하얗게 뒤집어쓴 축사가 그의 시간만 표백해 정지시킨 듯했다. 생석회를 깐 노동자들은 작업반장만 빼고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었다. 농장에서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가는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었다. 파주에서 돼지가 없어지면서 그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정치상이 28년 동안 돼지를 키워 남긴 것은 7억원의 빚이었다. 집과 땅은 오래전에 은행 담보로 잡혔다. 사료값을 제하면 한 해 손에 쥐는 돈이 4천만~5천만원이었다. 2800여만원을 대출 이자로 넣고 남은 돈으로 일년을 살았다.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부도가 난 걸까.”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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