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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금리 바닥인데, 매월 꼬박꼬박 나오는 이자에 속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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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비극, 다단계 금융사기] <3>악마의 덫에 빠진 사람들

“일확천금 바라다가 당해” 시선에 상처… 극단적 선택도 고민
한국일보

박명숙(가명ㆍ가운데)씨 등 IDS홀딩스 다단계 금융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한 빌딩 사무실에서 한국일보 기자에게 피해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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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30년 넘게 노점상을 하며 번데기와 솜사탕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윤경아(57ㆍ이하 피해자 이름은 전부 가명)씨에게 IDS홀딩스의 투자 권유는 불안한 노후를 대비할 괜찮은 기회로 보였다. IDS 투자를 권유한 재무설계사 최모(46)씨도 직업 군인인 아들 소개로 알게 돼 믿을 수 있는 사람 같았다. 최씨는 군인 대상 재테크 강연을 다녔고, 최씨 부부는 윤씨가 다니는 대전의 유명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해 온 착실한 신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재테크 상담비용 20만원을 치르고 만난 자리에서 최씨는 현란한 전문 용어와 숫자를 써 가며 외환(FX) 마진 거래를 설명했다. 상담이 이뤄진 시내 중심가의 번듯한 사무실에는 ‘지점장’이라 적힌 최씨 명패도 있었다. 윤씨는 “최씨가 ‘나도 전세 보증금을 빼서 IDS에 6억원을 투자했다’고 하니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16년 IDS의 금융 다단계 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윤씨는 원금을 날려 버린 처지다. 이 일로 그는 IDS 투자 사실을 몰랐던 남편과 말다툼 끝에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가고 협심증에 걸리는 등 가정이 해체 직전까지 몰렸다고 했다. 하지만 윤씨 같은 피해자 수백 명에게서 투자금 142억원을 유치하고, 그 대가로 모집수당을 9억원 넘게 챙긴 최씨는 지난 7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1조원대 다단계 금융사기업체인 IDS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사건 피해자들은 피해 회복은커녕 ‘일확천금을 바란 피해자 탓도 있다’는 주변의 눈초리에 상처 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재테크가 의무처럼 된 시대에 누구든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사례가 전하는 교훈이다. 이들 역시 평생 투기라곤 몰랐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전직 교사 박명숙(74)씨는 2015년 “월 2% 이자를 주는 곳이 있다”는 성당 교우의 말에 IDS 모집책을 만났다가 물려 받은 재산 20억여원을 모두 투자했다. 박씨는 “평생 여윳돈이 없어서 재테크 한 번 못 해 봤는데 물려받은 땅이 노년에 처분돼 수중에 돈이 있었다”며 “IDS 투자 설명을 듣고 ‘하느님 뜻인가’ 싶어서 전부 투자했던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이자가 꼬박꼬박 나왔죠. 그래서 당시 수사를 받던 김성훈 IDS 대표에게 ‘고맙다, 힘내라’는 감사 문자도 보냈는데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내 권유를 듣고 투자한 사람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죠.”

이진용(65)씨는 2015년 고향 후배로부터 1년 만기에 월 1.5%의 수익금을 받는 조건으로 IDS 투자 제안을 받았다. 후배 소개로 참석한 IDS 설명회에는 200명 넘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룬 터라 의심을 할 이유도 없었다. 이씨는 ‘외환거래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외환 딜러에게 돈을 빌려 주고 수수료를 받는 형식이라 절대 원금을 날릴 수 없는 구조’라는 설명을 듣고 일단 여윳돈 600만원만 투자했다. 이후 1년간 매월 빠짐 없이 이자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 이씨는, 만기 즈음 수익률을 2.7%로 올려 주겠다는 후배 권유에 전세금을 담보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액을 투자했다. 이씨는 “부양가족이 병원을 옮겨야 할 상황이라 돈이 필요해 무리했던 것 같다”며 당시 결정을 후회했다.

금융사기 업체들이 한동안 이자를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건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을 가져다 기존 투자자들에게 주는 돌려막기 때문이지만 투자자들로선 사기행각이 수사 등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알기 어렵다.
한국일보

IDS홀딩스 피해자들이 2017년 12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IDS의 정ㆍ관계와 법조계 로비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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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를 운영하는 김문환(57)씨는 2014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의 IDS 사무실에서 열린 투자 설명회에 갔다가 유력 정치인 등의 화환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에 기가 죽었다. 그래도 김씨는 신중한 투자를 위해 먼저 1,000만원만 넣었다. 하지만 이자가 잘 나오자 투자금을 8억원으로 늘리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가족들에게 빌리고 주택 담보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돈이었다. 김씨는 2015년 VIK에도 6,500만원을 투자했다. “돈 없는 사람도 사모펀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보험설계사 권유에 설득을 당한 것이다. 김씨는 “사기 당하는 건 아주 간단하더라. 워낙 금리가 낮으니 좋은 투자처가 있나 살펴보다가 돈을 불려 보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씩 설득을 당해 결국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 지식이 적은 고령자들만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VIK는 20대와 30대 피해자가 많다.

30대 회사원 최규용씨는 직장 초년생 시절 독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재테크 궁금증을 해소하려 30만원짜리 유료 재무설계 상담을 받았다. 무료 상담은 보험 등 금융상품 판매 권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값을 치르고 상담을 받은 것인데 되레 독이 됐다. “은행 예금만 해서는 절대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재무설계사의 권유로 강남의 VIK 사무실에 가 봤어요. 규모도 크고 잘 꾸며져 있어 정말 유망한 회사 같았고, 망할 거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었죠.” 최씨는 이후 VIK에 2,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날렸다.

온 가족이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2013년 부모님과 함께 총 1억4,000만원을 VIK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투자한 회사원 송상현(29)씨는 VIK의 투자설명 내용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터무니없는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약속하지 않고 연 3~5%의 안정적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것. 송씨는 “원금 보장을 약속하면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상품에 ‘확정수익추구형’이라는 교묘한 표현을 써서 투자자들을 현혹했다”고 기억했다.

일부 금융사기 피해자들은 분노와 자책감 끝에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기도 한다. 김문환씨는 “한강 다리에 올랐다가 폐쇄회로(CC)TV에 찍혀 경찰이 집에 찾아온 적도 있다”고 털어 놨다. IDS홀딩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까지 IDS홀딩스 사건의 여파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지병이 악화해 숨진 사람이 50명에 이른다는 자체 집계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검찰청과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책임자 강력처벌을 요구하며 피해 회복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피해자들이 아직은 훨씬 많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한국일보

VIK의 조직구조와 수당지급 체계.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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