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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악마의 편집, 순위 조작…‘오디션 왕국’ 엠넷 논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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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흥행 시작된 경연의 왕국

10년간 가지 치듯 프로그램 쏟아내

‘슈스케’부터 ‘프듀’ 시리즈까지

공정성은 잊은 ‘도덕 불감증’ 만연

시청률 오른다면 비난도 반겨

케이블 시청률 기록 터져 나오니

노이즈 마케팅 노골적 환영

천억대 매출 앞 벌금 정도는 ‘껌값’

내부 각성 없이 또 경연 프로 제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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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의 조작 불감증이 지금의 사태를 낳았다.”

경찰 수사로 <프로듀스 48>(시즌3)과 <프로듀스 엑스(X) 101>(시즌4)의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가요계와 방송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무리 ‘방송에 100% 리얼은 없다’지만, “100% 국민투표로 뽑는다”는 걸 강조해온 프로그램이 조작의 온상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과거 엠넷의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연습생은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모든 게 조작이었다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100% 국민투표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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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스타K>~<프로듀스101>…경연 프로의 왕국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엠넷 경연 프로그램의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95년 한국 케이블 티브이 개국과 동시에 문을 연 엠넷은 2009년 <슈퍼스타케이(K) 시즌1>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경연 프로그램의 왕국’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슈퍼스타케이>를 <슈퍼스타 2016>(시즌8)까지 7년간 매년 만든 것 외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였다. 2012년 2월 <보이스 코리아>(2013년 시즌2 방영)에 이어 5월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지난 7월 시즌8)까지 시작했다. <쇼미더머니>가 인기를 끌자 똑같은 힙합이지만 각각 여성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아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2016년 시즌3)와 2017년 <고등래퍼>(지난 2월 시즌3)를 내보냈다. <프로듀스 101>이 성공한 이후에는 아이돌에 집중한 <소년 24>(2016년), <아이돌학교>(2017년)를 만들었다. <슈퍼스타케이>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나무가 가지를 뻗듯 비슷한 경연 프로그램을 쏟아내며 연명해온 것이다. 씨제이이엔엠의 한 피디는 “엠넷에 있어 경연 프로그램은 채널의 존재감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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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작의 싹…악마의 편집·공정성 논란

하지만 엠넷의 자존심과도 같은 경연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슈퍼스타케이>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따라 했다는 표절 의혹 속에 출발했다. 당시에도 순위 조작까지는 아니지만 편집으로 거짓 상황을 만들어 논란을 빚었다. 이런 행태는 ‘악마의 편집’으로 불리며 오히려 홍보에 활용됐다. <슈퍼스타케이 시즌3>에 참여한 한 밴드는 “제작진이 사실과 다른 조작 편집을 했다”고 폭로하며 숙소를 무단 이탈하기도 했다. 이 밴드는 당시 <한겨레>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전후 상황을 바꿔 편집해 우리가 상대방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반말을 일삼는 사람으로 비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프로듀스 엑스 101>을 통해 불거진 공정성 문제는 이미 <쇼미더머니>에서부터 그 싹을 드러냈다. 가사를 틀린 실수를 한 여성 래퍼를 합격시키는가 하면, 예선에서 떨어졌는데 제작진의 요청에 재심을 보고 합격했다는 한 래퍼의 고백까지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화제몰이에 성공하며 시청률이 높아졌기에 각성하지 않은 것 같다”며 “<슈퍼스타케이> 때부터 이어져온 도덕 불감증이 엠넷 안에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쇼미더머니> 피디도 시즌4 당시 제작발표회에서 “어느 정도의 논란은 필요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으면 시즌4까지 못 왔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노이즈 마케팅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악마의 편집’의 시초로, 엠넷을 경연의 강국으로 만들어준 <슈퍼스타케이> 시즌1 10회의 경우, 1%만 넘겨도 성공했다고 평가받던 당시 케이블 분위기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인 7.7%를 기록했다. 시즌2에서는 케이블 역사상 처음으로 10%를 넘겼다. 공교롭게도 <슈퍼스타케이 시즌1~3>을 만든 김용범 피디가 조작이 벌어진 <프로듀스 101>의 책임피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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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 부른 솜방망이 제재…실효적 조처 절실

악마의 편집 등 논란이 계속돼도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결국 조작에까지 이르렀다는 의견도 나온다. <쇼미더머니>는 시즌1~3 방영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징계를 받았지만,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시즌4에서 더 심한 논란을 불러 총 5천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 시즌2>로 데뷔한 그룹 워너원이 1천억원 넘는 매출을 올린 상황에서 수천만원의 벌금이 무서울 리 없다. 씨제이이엔엠은 2019년 3분기에 매출액 1조1531억원, 영업이익 641억원을 기록했다.

지상파·종편과 달리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 심사 대상이 아닌 엠넷 등 케이블 채널에 실효적 조처를 내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매출 2천억원 이상 방송사업자는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시청자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 일명 ‘프듀 엑스 국민 감시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엠넷은 <프로듀스 48>과 <프로듀스 엑스 101> 조작이 드러났지만 10대를 위한 또다른 경연 프로그램 ‘10대 가수’ 제작을 강행하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경연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이돌 산업을 끌어들이면서 자체적으로 매니지먼트사까지 두더니, 결국 기획사와 담합을 하는 등 범죄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 경연 프로그램을 왜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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