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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백영옥의 말과 글] [123] 약이 되는 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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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호르메시스’라는 말이 있다. 인체에 해롭기는 하지만 소량이라면 과잉 반응을 촉진해 유익하게 작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독살을 피하기 위해 소량의 독을 매일 마셨다는 백작 얘기가 그런 경우다. 병원균에 미리 노출시키는 예방주사도 그런 원리다. 파도 소리나 카페의 소음처럼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백색소음은 어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이라는 주목할 만한 심리학 용어도 있다.

나심 탈레브의 책 '안티프래질'에는 호르메시스에 관한 에피소드가 풍성하다. 가령 동물을 대상으로 칼로리 공급량을 줄이면 건강해진다. 공복의 이점에 대한 새로운 논문이 계속 나오거나 간헐적 단식이 유행하는 것도 호르메시스 효과 덕분이다. 채소의 장점이 비타민이 아니라 오히려 식물의 독성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손발이 없는 식물이 해충에게 대항하기 위해 내뿜는 것이 강력한 독성인데, 이 독성 물질이 오히려 우리 몸을 강건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주마는 자기보다 열등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지고, 더 우수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이긴다. 시간이 많으면 게을러지다가, 시간이 촉박할 때 일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일명 '초치기 현상'으로, 바쁠수록 일을 더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이런 역설적 과잉 보상은 삶의 복잡성이나 비선형성을 설명하는 예시 중 하나다. 호르메시스를 잘 파악하면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쁘다는 해석을 경계하게 될 것이다. 약간의 소음, 공복, 허기, 독성, 비판 등은 우리를 이롭게 한다. 더 나아가면 스트레스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명백히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더 중요한 지점을 꿰뚫는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해로운 물질로부터 얻는 혜택의 관점이 아니라, '해로움 혹은 약효는 복용량'에 달려 있다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중요한 건 복용량이다. 다량의 독극물뿐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뺏는 악플도 있기 때문이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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