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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필동정담] 한국당 물갈이론과 後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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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 바람에 휩쓸려 공천에서 탈락한 고(故) 후농 김상현은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국회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한동안 잠적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택을 찾아갔다. 후농은 없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차남 영호 씨가 맞았다. 둘이서 두어 시간 한담하며 후농을 기다리는데 겨울인데도 난방을 하지 않아 으슬으슬 추웠다. "집이 춥군요"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야당을 오래 하다 보니 이렇게 지내는 게 익숙합니다"라고 한다. 후농은 정치자금을 만들 줄 아는 정치인이었으나 집을 돌볼 틈은 없었던 것 같다. 격정의 삶을 살면서 멋을 잃지 않고 이재에는 무심했던 후농이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영남권·강남 3선 이상 중진의 용퇴를 촉구하자 해당 의원들은 "누가 나가라 마라 할 일이 아니다"고 발끈하고 있다. 인위적 세대교체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용케 물갈이를 한다 치고 그 빈자리를 누구로 채울지 그림이 뻔히 보인다. 보수정권에서 잘나갔던 고위 공무원, 판검사, 전직 장성, 방송 친화형 변호사, 현 정권 들어 물먹은 언론인…. 출세 경력의 정점을 국회의원 타이틀로 찍고 싶어하는 정통 엘리트들이다. 여기에 '금수저'이거나 너무 운이 좋거나 해서 일찌감치 인생의 목표에 도달해 버린 '젊은 귀족'들이 구색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물갈이는 하면 뭐 하나. 지금 한국당 의원들이나 영입 대상자들이나 그다지 다를 바 없는데. 얼굴 바뀌고 나이 젊어지면 그게 세대교체인가.

어쩌면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엘리트 교체가 아니라 '후농형 인재'의 발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익이 아니라 이념을 위해 싸워 본 사람, 엘리트 의식이 아니라 교양이 있는 사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배고픈 이웃을 위해 지갑을 털 수 있는 사람, 서민정신과 애국심. 한국당에는 없고 후농에게는 있었던 매력이다. 지하의 후농은 '한국당? 글쎄' 하겠지만.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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