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우리궁궐지킴이’ 조향숙씨 “주입식 해설보다 사람 이야기로 궁궐·우리 문화 관심 갖게 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궁궐지킴이 1기 조향숙씨는 “궁궐을 설명할 때 무조건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기보다 각 나라의 고유한 아름다움 속에 우리 문화가 가진 차이점을 이야기에 녹여 설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킴이 660명이 모두 6만6000회 해설…“내가 좋아하는 봉사”

시민들의 문화적 자부심 높아져…늘 공부하고 알려주는 ‘보람’


“배워서 남주자”는 모토로 20년간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봉사활동을 무보수로 이어온 단체가 있다. 1999년 9월 활동을 시작한 ‘우리궁궐지킴이’다. 궁궐지킴이들은 서울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과 종묘에서 방문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이어왔다. 우리궁궐지킴이가 속한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이 오는 9일 20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집계한 결과, 1기 66명으로 출발해 21기까지 총 660여명의 지킴이들이 그간 궁궐과 종묘를 찾은 시민과 외국인 136만7159명을 대상으로 총 6만5999회의 해설을 했다. ‘우리궁궐지킴이’가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을 지키는 동안,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관광객의 태도도 그만큼 달라지고 성숙했다. ‘우리궁궐지킴이’ 1기로 20년간 경복궁에서 해설을 맡아온 조향숙씨(55)를 지난 5일 만났다.

조씨는 “생활의 일부처럼 해온 일이라 20년이나 되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격주 금·토요일마다 경복궁을 찾았으니 20년이면 적어도 1050여번의 경복궁 해설을 한 셈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무보수로 20년간 봉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산에서 중학교 역사교사로 교편을 잡았던 조씨는 결혼과 함께 서울로 오면서 궁궐 해설활동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남편이 우연히 궁궐지킴이 모집 안내를 보고,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궁궐 안내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중력이 길지 않은 어린이들부터 시각장애인,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조씨는 각자의 눈높이에 맞게 해설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로 인한 웃지 못할 일화도 적지 않다.

“한번은 중국인 관광객이 경복궁 안의 민속박물관을 보고 경복궁은 유교가 바탕이 된 정치궁궐인데, 왜 불교식 건물을 박물관으로 지어놓았느냐고 물어봐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어요. 법주사 팔상전을 본떠 민속박물관을 지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통의 형태만 고수하면 민족문화인 걸로 생각했는데, 외국인의 눈에는 그런 문제가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뜨끔했죠.”

조씨는 “주입식 해설보다는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정궁으로 지었던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 소실되면서 270년을 폐허로 있었다.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꿈틀대던 19세기 중반 흥선대원군이 복원을 시작해 명성황후 시해, 1995년 조선총독부 철거에 이르기까지 조선부터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어낸 궁궐이 바로 경복궁이다. 조씨는 “궁궐이 한국의 건축을 알리는 역할도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났던 정치적·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해왔는지, 당시 지도층에서 어떤 충돌을 겪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시민들의 문화재 인식도 한결 성숙해졌다고 했다. 조씨는 “맨 처음 경복궁에 나갈 때만 하더라도 ‘무료입니다. 안내해 드릴까요’부터 시작했다”며 “그만큼 사람들이 문화재를 깊이 있게 보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궁궐이나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 특징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체험학습을 오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관람객이 해설을 듣고, 관심을 갖는다”며 “우리 문화에 대한 여유, 자부심이 커진 걸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하는 만큼 늘 공부하는 자세로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궁궐의 장점 중 하나가 도심 속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인데, 요즘은 틈날 때마다 경복궁 안의 꽃나무들을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며 웃었다. 그는 “누군가는 돈도 받지 않고 왜 하냐고도 하지만, 하지 않으면 모르는 큰 보람이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