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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유명인 몰래 구속이 '조국표 인권수사'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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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어 경찰도 '프듀 투표조작' 구속 영장청구 사실 감춰

법원선 출석 10분전에 공지...국민 알권리 무시 우려 목소리

정·재계 거물급 '솜방망이 처벌·과잉 수사' 악용 더 쉬워져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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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 제작진과 연예기획사 관계자가 법무부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 강화 방안이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사실상 비공개 구속 절차를 밟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해당 조치가 인권보호를 위한 장치가 맞는지에 대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법무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찰까지 주요 사건 영장청구 사실 감추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우려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기존 피의사실 공표 대상이던 특권층이나 일부 유명인들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와 인신 구속 여부를 모두 알 수 없게 돼 수사기관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일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프로그램 담당자 안준영 PD와 김용범 CP(CJ ENM 국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범죄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피의자의 역할·지위 및 수사경과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A연예기획사 관계자 등 2인의 경우 범행 관여 정도, 동종 범죄전력 유무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안 PD 등은 ‘프로듀스 X 101’을 통해 데뷔하는 아이돌 멤버 11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득표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CJ ENM의 수사 의뢰와 시청자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의 고소·고발로 지난 7월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이날 구속심사가 조명을 받은 것은 영장청구 과정에서 보인 경찰과 검찰의 달라진 태도 때문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모두 4일 본지 보도 전까지 안 PD 등에 대한 영장 신청·청구 사실과 구속심사 일정을 일절 발설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심사 당일인 이날 오전6시가 돼서야 ‘10월30일 영장을 신청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누구’를 ‘무슨 죄로’ 구속심사에 넘겼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언제 영장을 청구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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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이 영장청구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서 기자단의 문의가 없자 법원 역시 일정을 공유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날 오전부터 언론의 문의가 이어지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전9시24분에야 안 PD 등에 대한 구속심사 일정을 공지했다. 안 PD가 법원에 출석(오전9시35분)하기 고작 10분 전이었다. 여론의 관심이 높은 사건임에도 법원 포토라인조차 무력화될 뻔했다. 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주요 사건의 영장청구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 문의도 없이 법원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선별해 영장심사 일정을 공지할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경찰이 ‘프로듀스 X 101’ 사건 영장 신청·청구 사실을 감춘 것은 지난달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을 발표한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당 훈령 시행일은 다음달 1일이지만 청와대의 방침이 확고한 만큼 검찰은 물론 경찰까지 가세해 미리부터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이는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취임 때부터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서둘러 추진된 사안이다. 이 훈령은 수사인력의 언론 접촉을 원천 차단하고 오보를 낸 언론사의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까지 담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없는 부분에 대해 (법무부 훈령을)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프로듀스 X 101’ 구속영장 청구·심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계속 무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사건의 경우 그나마 방송이 종영된 7월부터 압수수색 등 수사 착수 사실이 알려진 상태라 구속심사 일정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경찰은 이날도 해당 사건과 관련해 CJ ENM 사무실 등을 추가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향후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정치·재계·연예계 관련 사건의 경우 검찰·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는지, 구속을 시켰는지, 불기소 처분으로 수사를 끝냈는지 등을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사기관이 마음먹기에 따라 거물급 인사들을 국민 몰래 ‘솜방망이 처벌’하거나 과잉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 지침으로 검찰 입장에서 누군가를 수사하고 영장을 청구하기는 훨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10대 그룹 기업 관계자는 “외부에 수사 사실이 알려지지 않으니 검찰·경찰에 로비하기가 오히려 더 쉬워진 것 아니냐”며 “다만 크지 않은 일도 이제 취재 경쟁이 붙어 오히려 사건이 더 크게 보도될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윤경환·오지현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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