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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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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아시아 '노 쇼'하자 중국이 그 자리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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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재 틈타 중국 주도 RCEP 합의

트럼프 2연속 아세안 정상회의 불참

펜스도 유세 때문에 바빠 보좌관 보내자

아세안 7개국 정상 미국과 회담 보이콧

중앙일보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참석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리커창 중국 총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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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시아에서 자리를 비우자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5일(현지시간) 폐막하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연속 불참하자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순조롭게 합의됐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과 무역 및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부통령도 참석하지 않은 미국은 역부족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15개국이 큰 틀에서 RCEP 협상에서 합의를 이루면서 중국 주도의 경제 질서 구축에 한 걸음 다가섰다.

RCEP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는 성격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동맹국과 우방국을 주축으로 하는 세계 최대 무역협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TPP 탈퇴를 선언하자 중국은 이를 기회로 2012년부터 추진해 온 RCEP 협상에 속도를 높였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성장 둔화에 직면하자 RCEP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이번 합의는 중국과 아시아 경제권을 더욱 통합시킬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RCEP 타결에 대한 반응을 내놓는 대신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재차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인도ㆍ태평양 전략 추진 경과를 담은 30쪽짜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면서 “한국의 신남방 정책을 비롯해 일본ㆍ인도ㆍ호주의 지역 전략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에 2년 연속 불참해 미국이 아시아 외교를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과거와 달리 아시아 국가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세안 정상들은 미국과의 정상회의를 '보이콧'했고, 미국은 모욕을 주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아세안과 미국 간 정상회담에는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태국ㆍ베트남ㆍ라오스 총리 3명만 참석했다. 싱가포르ㆍ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 등 7개국 정상은 작정하고 정상회담을 ‘보이콧’했다. 대신 외교장관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한 데다, 지난해처럼 마이크 펜스 부통령조차 보내지 않은 데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

미국은 지난 9월 취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대리 참석시켰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행정부 각료가 아닌 데다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 때인 2011년 아세안과 관계를 격상시킨 이후 가장 낮은 직급의 대표단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아세안 국가 정상들이 ‘노 쇼’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 1일이다. 교도ㆍAP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아세안 외교 장관들이 지난 1일 업무 만찬을 하면서 태국ㆍ베트남ㆍ라오스 3개국 정상으로 구성한 ‘트로이카’만 회담장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 ‘노 쇼’한 만큼 아세안 국가들도 이에 맞춰 정상회담 참가자의 격을 낮추기로 했다는 것이다.

참석한 3개국은 올해 회의 의장국인 태국, 내년도 의장국인 베트남, 아세안과 미국 간 정상회담 조율을 맡았던 라오스로 선정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미국이 “아세안 정상의 보이콧은 미국 대통령을 모욕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면서 “이는 아세안과 미국의 실질적 관계에 매우 큰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 외교관은 “아세안의 결정에 큰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아세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언짢게 느꼈다”면서 “트럼프가 최소한 행정부 각료를 보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내년 백악관 초청을 제안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내년 1분기 중 상호 합의하는 시간에 미국에서 아세안과 미국의 특별 정상회의를 열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이 연안의 2조5000억 달러 규모 원유와 가스 자원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협박해 왔다”며 중국의 남중국해 문제를 강도 높게 비난했으나, 미국의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 내 선거 유세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 선거를 앞둔 켄터키에서 대규모 유세를 벌였다.

트럼프의 아세안 정상회의 불참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관련 있지만, 당장 미국 내 선거와 내년 대선이 급한 상황에서 미국 리더십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줬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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