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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회색코뿔소 '홍콩인권법' 임박‥美中 무역전쟁 격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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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美 하원 통과한 홍콩인권법, 상원 통과도 확실시

상원의원 100명 중 31명 찬성 표명…'반대 명분 없어'

中 캐리람 교체 카드 내도 美 법안 통과시 '보복' 불가피

"무역협상 이어가지만…홍콩, 미중관계 해빙 해칠 것"

이데일리

홍콩 시위대는 지난 14일 홍콩 도심에서 열린 반중 집회에서 성조기를 들었다. 이들은 미국 의회에서 ‘홍콩 인권 민주주의법안’를 서둘러 통과시켜 미국이 중국을 제어해주기를 바라고 있다.[AF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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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외면하기 쉬운 위협, 이른바 ‘회색 코뿔소’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테이블을 뒤엎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이 미국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될 분위기다. 중국은 미국에 보복을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법안 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협상단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페루에서 만나 통상 갈등을 완화하는 ‘1단계 합의’에 서명하는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홍콩 인권법 통과 쪽으로 계속 나아가는 모양새다. 잠시나마 긴장이 풀렸던 미·중 관계가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美 대권 주자도 찬성하는 홍콩 인권법…가결 초읽기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총 100명의 미국 상원 의원 중 31명이 ‘홍콩 인권법’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중에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고 현재도 당 중진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의원,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매사추세츠)도 포함돼 있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월부터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이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약속했으면서 계속 홍콩을 중국화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700만 인구의 홍콩에서 300만 시민이 거리에 나올 정도로 홍콩 시민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미국 의회는 홍콩 시민의 시위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재 미국은 홍콩에 대해 중국 본토와 관세와 투자, 비자 발급상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 홍콩 인권법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한 지위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사람들에 대해선 미국 입국에 필요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홍콩 인권법은 공화당의 루비오 의원을 포함해 크리스 스미스(공화·뉴저지) 하원 의원, 벤 카딘(민주·메릴랜드) 상원의원이 발의했다. 상·하원과 당을 막론하고 뜻을 모아 발의된 법안인 셈이다.

법안은 지난 15일 미국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제 상원 통과만 남았다. 상원에서 과반 이상이 찬성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치면 효력을 갖게 된다. 현재 상원의 표결 날짜는 잡히지 않았지만 짐 리쉬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가능한 빨리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미국 의원들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평가한다.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미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루비오 의원은 “홍콩의 일은 단순한 중국 내정이 아니다. 미국과 다른 책임 있는 국가들이 옆에서 구경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낭떠러지에서 말고삐 잡아라’ 강력 경고 날린 中

미국 의회가 홍콩 인권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3일 네팔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어떤 영토라도 분열시키려는 이가 있다면 몸이 부서지고 뼛가루로 산산조각 나는 결과(粉身碎骨)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홍콩 시위대가 홍콩 인권법 통과를 지지하기 위해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고 테드 크루즈 미국 상원의원이 조슈아 웡 등 시위대 간부를 만나던 시점이었다. 시 주석은 미국 의회가 추진하는 홍콩 인권법에 매우 불만이 많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날에도 중국 정부의 불편한 감정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정세를 분명히 보고 ‘낭떠러지에 이르러 말 고삐를 잡아채길 바란다(懸崖勒馬)”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중국 정부가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직전에 썼던 표현이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보다 더 강한 외교수사는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勿謂言之不預)”밖에 남지 않았다. 중국이 인도·베트남과 전쟁에 돌입하기 직전 사용했던 표현이다. 신중국 70년 역사상 두 번 등장했던 용어다. 중국 정부가 얼마나 홍콩 인권법에 예민한지 알 수 있다.

중국 정부도 수위를 넘지 않으려 노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제적인 시선에 홍콩에 집중된 이상, 홍콩에 군사 투입을 검토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을 교체하는 카드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가 ‘홍콩 인권법’을 강행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보복 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의 보복조치로는 미국 기업 활동 압박이나 농산물 수입 지연이 꼽힌다. 이제까지 진행된 무역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중단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에 실질적인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때처럼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이나 관광 중단 등도 가능하다. 노골적으로 반중국 친미국 성향을 보이는 홍콩에 대해 더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번 주 열리는 4중전회(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 4차 전체회의)로 눈길이 쏠린다. 이 회의는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향후 중국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데, 최근 홍콩의 혼란이나 미국의 개입을 놓고 시 주석에게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으론 외부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國夢·중국몽)과 단결을 강조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 위기를 수습할 수밖에 없다.

한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경제보다 정치문제, 특히 영토 부분에 예민한데 미국이 이를 계속 자극하고 있다”면서 “양국 무역대표단이 접촉을 하고 있지만 홍콩문제는 미·중 관계에 계속 암초로 작용하며 양국의 해빙 분위기를 해칠 것”라고 우려했다.

※용어설명: 회색 코뿔소란?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말이다. 코뿔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고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정작 아무 것도 못하거나 대처방법을 알지 못해 일부러 무시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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