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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대법 "인공수정 자녀도 친자...'혈연'만이 가족 기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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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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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중 출생한 자녀는 원칙적으로 법적인 부자(父子)관계라는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유지됐다. 가족 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 ‘혈연’만을 기준으로 놓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인공수정과 유전자 검사 등 의학 기술이 발달해 어디까지 친자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논란은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3일 A씨가 "친자녀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자녀는 A씨의 친자녀라는 것이다.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으로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한 A씨가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A씨는 그러나 둘째가 십대가 될 무렵 혼외자인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A씨는 두 자녀 모두 자신과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함께 가정을 꾸려오다 2013년쯤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절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을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자녀들은 그 즈음에야 A씨가 친부가 아님을 알게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 역시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는 아니었다.

민법은 혼인 중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신 남편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생 부인(否認)의 소송을 낼 수 있다. 이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거나 패소하면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원은 친생추정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면 남편이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통해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판례는 1983년 이래 부부가 동거하지 않던 중에 출생한 자녀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을 예외로 인정해 왔다.

1심은 기존 판례를 좇아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두 자녀 모두 A씨의 친생자라고 결론냈다. 2심도 결론은 같이 했지만, "타인의 정자로 인공수정하는데 남편이 동의한 경우 친생자로 추정되고, 이에 대해 친생부인의 소송을 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기준만 달리 제시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바꿀지 검토하기 위해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 올해 5월 공개변론 등을 진행했다. 인공수정으로 임신하는 등 ‘친자녀’의 개념이 모호해진 데다, 유전자 감식 기술이 발달해 친생자 관계인지 확인하기가 쉬워진 만큼 예외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서다.

대법원은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라도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출생한 경우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해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입법 취지와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제도 등에 비춰보면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친생추정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한다"며 "자녀가 남편과 혈연 관계가 없다는 것만으로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안정시키려 하는 친생추정 규정 본래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했다.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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