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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기고] 공수처 설치는 검찰 개혁에 역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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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상환 변호사·前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한동안 전국을 강타하고 국론을 깊이 분열시킨 광풍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와 함께 잦아드는 분위기다. 조 전 장관은 짧은 장관 재임에 대해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검찰 개혁의 방향은 크게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이다. 가칭 공수처를 만들어 검사, 판사 등 사회 지도층에 대해 전적으로 수사를 담당하도록 하고, 현재의 수사 구조를 획기적으로 조정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여당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서 자세히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부는 '검찰 힘 빼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데 그것이 목적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잘못하면 검찰이나 다른 수사기관들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훼손될 우려가 있다. 검찰의 경우 오랜 역사와 전통,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조직 구성원들의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홍역을 치렀다. 신설된 공수처가 검찰보다 더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권 조정 같은 중대한 문제는 국민의 삶, 기본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안에 검찰 등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적 수사 관행의 개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부분도 문제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공수처 설치든 수사권 조정이든 수사기관의 역할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조직은 팽창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더 많은 수사기관, 더 강력해진 수사기관, 더 광범위한 수사기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향후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수사기관의 역할을 줄일 것이냐'이다.

그동안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검찰이 해결사 역할을 해왔으며, 언론과 국민은 검찰청을 쳐다보았다. 역대 모든 정부는 검찰을 이용해 국정을 장악하려 했다.

현행 법률도 수사 만능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34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해 수사기관에 수사의 단서가 있을 경우 수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수사 결과에 불만이 있는 고소·고발인에게 항고, 재항고나 재정신청 등 이중 삼중의 불복 절차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체나 제3자가 고발하더라도 검찰은 수사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과거에 이미 수사나 재판이 이루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정의와 진실 발견의 명목으로 재수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제 검찰에 의한 국정 운영이라는 오랜 관행을 고쳐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경우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거나 기소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모든 사건을 검찰이 다 밝힐 수도 없고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나 정치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자제하고 정치적으로 또는 국회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는다. 그 결정을 검찰에만 맡길 경우 공정성 시비가 생길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요청이 있는 경우 또는 직권으로 수사 회피나 일정 기간 수사 보류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정상환 변호사·前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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