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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하원서 승인 투표 또 무산…영국 ‘미궁 빠진 브렉시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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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분열로 답답함 연속

보수당, 과반 상실해 ‘교착’…노동당도 내부 당론 갈려

존슨, 일정 단축안 제출 땐 31일 ‘통과’ 가능성 커질 듯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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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이 21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승인을 다시 보류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3년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브렉시트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사이 두 명의 총리가 바뀌고 합의안은 세 차례나 의회에서 부결됐다. 영국은 왜 브렉시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EU와 영국이 지난 17일 타결한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를 시도했으나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48시간 전에 내놓은 것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며 승인투표 상정을 거부했다. 앞서 영국 의회는 지난 19일 브렉시트 이행법률이 의회를 최종 통과하기 전에는 승인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레트윈 수정안’을 통과시켜 승인투표가 무산된 바 있다. 이에 존슨 총리는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다. 이날 승인투표를 재추진해 오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할 계획이었으나 또다시 좌절한 것이다.

배경은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브렉시트가 ‘결정장애’의 늪에 빠진 직접적인 이유로 영국 의회의 분열이 꼽힌다. 집권 보수당 의원들부터 브렉시트에 대한 그림이 제각각이다. 보수당 의원들은 영국이 탈퇴 조건에 대한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는 강경파부터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EU 관세동맹에 남아야 한다는 온건파, 브렉시트 자체에 회의적인 그룹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보수당 온건파 의원 21명은 지난달 존슨 총리에 반기를 들고 ‘노딜 반대법’에 찬성표를 던져 당에서 제명됐다.

보수당이 2017년 조기총선에서 과반을 잃은 것도 교착 상태를 키웠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는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총선을 감행했으나 오히려 이전보다 13석을 잃으며 과반을 상실했다. 보수당은 이에 10석을 확보한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과 사실상 연정을 꾸렸으나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의 지위와 관련한 문제가 협상 과정에서 번번이 영국 정부 발목을 잡고 있다.

노동당도 분열돼 있다. 노동당은 당론으로 브렉시트 이후 EU 관세동맹에 남는 방안을 채택했으나, 내부적으론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는 그룹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취소해야 한다는 그룹으로 갈려 있다.

의회가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총리가 어떤 합의안을 들고 오더라도 승인투표 통과가 쉽지 않다. 실제 메이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EU와 타결한 합의안은 올해 의회 승인투표에서 세 차례나 부결됐다. 영국 의회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지난 3월 모든 대안을 올려놓고 투표를 했으나 ‘노딜 반대’를 제외한 모든 대안이 부결됐다.

메이 전 총리와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는 국민의 뜻”이라고 해왔지만, 국론은 여전히 반반으로 분열돼 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51.9%가 찬성하고 48.1%가 반대했는데, 이 같은 흐름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올 들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잔류를 원하는 여론이 탈퇴 여론보다 높았다. 지난 19일 국회 앞에는 제2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시민 100만명(주최 측 추산)이 집결하기도 했다. 야당은 제2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여론이 반분된 상황에서 브렉시트를 강행하든, 제2국민투표를 하든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영국이 브렉시트의 방향과 후폭풍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채 국민투표를 실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리스토프 마이어 킹스칼리지대학 교수는 온라인 매체 더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극소수 의원들과 시민들만이 영국의 행정, 사법, 경제 체제가 EU와 얼마나 얽혀 있는지 깨닫고 있었다”면서 “지금의 교착 상태는 일련의 심각한 오해들이 낳은 헌법적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존슨 총리의 합의안이 보수당 강경파의 지지를 얻어내 상정될 경우 승인투표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존슨 총리는 22일 이행법률 통과에 필요한 일정을 단축하는 ‘계획안’을 제출해 난관을 돌파할 작정이다. 계획안이 통과되면 존슨 총리는 약속한 대로 31일 브렉시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존슨 총리는 22일 의회에서 EU 탈퇴협정 법안 토론 및 표결을 앞두고 “국민은 더 이상의 지연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오는 31일 브렉시트를 완수하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연정 파트너인 DUP가 반대하고 있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야당은 계획안 통과를 막는 데 실패하더라도 제2국민투표나 관세동맹 잔류를 내용으로 하는 수정안을 제출해 존슨 총리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영국 정부의 연기 요청에 대해 EU 27개 회원국 정상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영국의 곤경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브렉시트 이후 이행기간 동안 영국은 EU와 무역협상을 하는 등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여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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