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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사슴, 강, 암초…스코틀랜드 증류소 이름에 담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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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39)



맥주 축제에서 스코틀랜드인을 만난 적이 있다. 마치 외국인 케이팝 아이돌 팬이 한국 사람을 만나 흥분하는 것처럼, 내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떤 위스키를 좋아하시나요?”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나는 맥주를 좋아해요. 위스키는 잘 안마셔요.”

한국인이라고 모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건 아니듯이 스코틀랜드 사람 모두 위스키를 마시는 건 아닐텐데, 그 사실을 간과했다. 그래도 스코틀랜드 사람이 위스키를 잘 안 마신다니 의아스럽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그의 영어 발음. 함께 있던 캐나다 친구도 그 스코틀랜드인의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통역을 좀 부탁하려 했으나 둘은 완전히 대화가 안 통했다. 하긴 제주도 말만 해도 서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니, 캐나다와 스코틀랜드의 거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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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말을 서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든 것 처럼 스코틀랜드인의 영어를 캐나다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와 스코틀랜드의 거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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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어에서 온 위스키 증류소명



영어를 쓰는 이에게도 스코틀랜드 영어는 어렵다. 스코틀랜드 토착어인 게일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혼용하기 때문이다. 위스키 증류소 이름은 지역의 특징에서 따온 경우가 많은데, 스코틀랜드 지역명 대부분은 게일어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위스키 증류소 이름 중엔 현대 스코틀랜드인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이름이 많다. 유튜브에서 ‘How to Pronounce Scotch Whisky(스카치 위스키를 발음하는 법)’을 검색하면, 수 십 개의 영상이 검색될 정도다.

발음이 어려운 증류소로 ‘Glen Garioch’, ‘Caol Ila’, ‘LEDAIG’ 등이 있다. 이 영어들은 어떻게 읽힐까? ‘글렌 개리오크’, ‘카올 일라’, ‘레다익’. 하지만 실제로 스코틀랜드에서는 ‘글렌기리’, ‘쿠라이라’, ‘레이첵’ 등으로 읽는다. 사실 한글로 쓸 수 없는 발음이기 때문에,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위스키 증류소를 다녀온 김창수 씨는 “애매한 중간 발음이 많아서 모든 증류소명을 정확히 한글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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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 GARIOCH. 글렌 기리? 기이리? 기어리? [사진 김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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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알면 증류소의 풍경이 그려진다



발음은 어려워도 증류소 이름 뜻을 알면, 증류소가 위치한 곳을 상상해볼 수 있다. ‘아일 오브 쥬라(Isle of Jura)’는 ‘사슴 섬’이란 뜻으로, 실제로 섬에는 사슴이 사람보다 많이 서식한다. ‘카듀(Cardhu)’는 ‘검은 바위’, ‘알타 바인(ALLT-A-BHAINNE)’은 ‘우유 색을 띈 작은 강’, ‘보모어(Bowmore)’는 ‘커다란 암초’ 등의 뜻이 있다. 실제로 카듀 증류소는 검은 바위가 많은 지역에 있고, 알타 바인 증류소 근처엔 작은 강이 흐른다. 물론 보모어 증류소 앞바다엔 암초가 있다. 증류소 이름은 스코틀랜드의 자연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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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로익(Laphroaig) 증류소의 풍경. 라프로익은 게일어로 ‘넓은 만 옆의 아름다운 와지(窪地)’다. [사진 김유빈]



김춘수 시인은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썼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사랑의 시작이기도,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외국인 팬들이 멤버 이름을 어수룩하게 부른들 어떠랴. 그들 나름의 발음에 사랑이 담겨있다면, 오히려 그 발음이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나는 ‘위스키’의 ‘스’를 노홍철처럼 ‘th’로 발음하지만, 위스키를 너무나 사랑한다.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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