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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NL-PD 경계 희미해진 자리에 '아웃사이더'로 남은 대진연…반미ㆍ반일 이슈 부각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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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의 점거 농성 모습. 왼쪽부터 미쓰비시 계열사 사무실, 세종대왕상, 미 대사관저 [뉴시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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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사 사무실 앞, 세종대왕상, 미국 대사관저…

올해 들어 역사적ㆍ정치적 논란이 됐던 곳에 기습적으로 나타나 플래카드를 펼치며 점거 농성을 벌인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다. 지난 18일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침입한 이들의 핵심 시위 방법은 ‘기습 점거’였다. 이전에도 수차례 ‘기습 점거→농성’이라는 비슷한 행태가 반복됐다. 경찰에 따르면 21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된 4명 중 일부는 이미 불법 시위를 벌인 혐의로 과거 여러 차례 경찰에 입건됐다고 한다. 이들의 구호는 주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규탄’, ‘일본은 식민지배 사죄하고 경제 보복 중단하라’는 등 이었다.

2017년 ‘대학생노래패연합’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등 대학 운동권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대진연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건 그 이듬해다. 지난해 8월 이들 중 일부가 ‘박상학ㆍ태영호 체포 결사대 감옥행’이라는 이름으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를 비난하는 집회를 열면서다. 이들은 태 전 공사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통일에 방해되는 행동을 당장 멈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이 점쳐지자, 이를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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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 농성을 하기 위해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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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은 과거 운동권의 투쟁 방식과 구호를 이어받았다. 지난 18일 발생한 미 대사관저 침입은 1985년 전국학생총연합 산하 투쟁조직 소속 대학생 73명이 “광주 학살 사태에 미 정부가 책임을 지라”며 을지로 소재 미 문화원 도서관을 기습 점거, 단식 농성을 벌였던 사건을 연상시켰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과거 운동권과 닮아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들이 있다. 2019년 대학가 운동권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➀선전 활동에 SNS 적극 활용

과거 운동권의 강력한 무기가 대자보와 연설이었다면, 현재 이들에게 주요한 수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다. 대진연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낱낱이 기록한다. ‘농성 실시간 라이브 중계’ 부터 신입 회원 모집 방법 공유까지. 실제 이들은 지난 18일에도 미 대사관저의 담을 넘는 과정부터 연좌 농성을 벌이다 경찰과 실랑이를 하는 장면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이 밖에도 학교 커뮤니티에 꾸준히 홍보 글을 올리거나 ‘열사람 더’ 운동(10명이 100명을 조직으로 끌어들이는 것)에도 SNS를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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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모으기를 독려하는 대진연 블로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블로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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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운동권의 두 축을 이뤘던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이들 중 일부가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결정된 통합진보당의 이상규 전 의원이 상임대표로 있는 민중당과 접점이 있다는 점 ▶한대련이 사실상 대진연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NL 계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진연이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노선을 발표한 바는 없다. ‘NL의 적통’ 격인 한대련은 2012년 통진당 폭력 사태 이후 대학 지부들의 탈퇴가 줄을 이으면서 세력이 약해졌다. 공식 해체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대진연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지난해 부터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➁과거엔 ‘인싸’, 현재는 ‘아싸’?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ㆍ1987~1993),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ㆍ1993~ )과 같은 운동권 단체들이 대학 내 ‘인사이더’ 였던 것과 달리, 대진연 등은 학내 영향력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웃사이더’(아싸)에 가깝다는 평이 다수다. 대진연 블로그 등에는 자신들을 동아리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주요 대학 중앙동아리 중 대진연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총학생회ㆍ단과대 학생회 역시 운동권의 명맥을 잇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진지 오래다. 과거 총학 선거에서 운동권ㆍ비운동권ㆍ반운동권과 같이 후보자의 정치성향 검증이 이슈였다면, 요즘 학내 선거에서는 이를 구분짓는 시도 조차 없다.

➂이념 투쟁에서의 압도적 우위도 뺏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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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서울 소재 한 대학에 붙여진 신 전대협 대자보.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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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생 사회 내 이념 투쟁은 운동권의 압승이었다. ‘이념’ 자체가 대학가에서는 이미 낡아진지 오래인데, 현재는 과거 운동권이 점했던 ‘압도적 우위’ 마저도 도전 받고 있다. 대진연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신(新)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파 성향의 단체로, 문재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대자보를 게재해 논란이 됐다. 영화 어벤저스의 캐릭터 `타노스`와 문재인 대통령을 합성한 삐라(불법 선전물)를 살포해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 인정ㆍ굳건한 한미동맹ㆍ탄핵의 부당성’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서울대 ‘트루스포럼’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역시 대학 내에서 참여 세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운동권은 ‘이념’이라는 ‘작아진 파이’ 조차 독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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