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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계부 손에 머리카락 다 뽑힌 채 숨진 5세...막을 기회 5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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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연합뉴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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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의붓아들을 2주 넘게 폭행한 끝에 숨지게 한 계부와 친모가 경찰에 붙잡힌 가운데 아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최소한 5번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모두가 외면한 사이 아이는 잔혹한 폭행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달 26일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5세 아동 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김 의원은 “아이는 8월 30일 보육원에서 나와서 계부와 친모 집으로 가서 26일만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아동학대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정말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라며 “사건일지를 상세하게 구성해보니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여러 제도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제도의 허점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인 계부 이모(26)씨는 피해 아동(5)이 가정으로 복귀한 뒤 2주간 수시로 폭행했다. 피해아동은 폭행을 당할 당시 머리채를 잡힌 탓에 탈모처럼 두피 일부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빠지고 사망 전 음식물을 먹지 못해 위 안에 남아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계부는 피해아동의 손과 발을 케이블 줄과 털실로 몸 뒤로 묶어 활처럼 휜 상태에서 목검으로 마구 때리고,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김 의원은 “이러한 참극을 막을 기회가 최소한 5번이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계부의 피해아동에 대한 접근금지 위반, 법대로만 조치했어도



2018년 7월 16일, 인천가정법원은 피해 아동에 대해 1년간 보호명령을 내린다. 계부 이씨에 대해 접근제한 및 전기통신제한을 결정한 것이다. 이씨는 아동학대로 입건돼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이씨는 접근 제한이 결정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8월 6일 친모와 함께 아이가 머물고 있는 보육원을 찾아가 면회를 하겠다며 폭언과 위협을 가했다. 이에 놀란 보육원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인천아보전)과 인천 미추홀구 담당공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연락을 받은 인천아보전은 인천가정법원(이하 법원)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9월 15일 이씨의 보육원 무단접근이 재차 발생했고, 아보전은 112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접근금지를 위반하면 안 된다”고 구두 경고만 하고 돌아갔다. 현행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피해아동보호명령 결정 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을 어긴 이씨에 대해 법원은 방치했고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김 의원은 “만약 이 때, 법원과 경찰이 법에 따라 조치했다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 아동 보호명령 7월 15일 만료, 기간 연장 신청만 했다면



피해 아동에 대한 법원의 보호명령은 7월 15일에 만료됐다. 아이를 보호하고 있던 보육원은 아마도 이씨의 접근금지 위반 사례와 폭력적 성향 등을 고려해 보호명령 연장 신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육원과 인천아보전이 그런 권한이 없었다. 현행법상 피해아동 보호명령은 1년까지만 허용된다. 이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판사의 직권이나 피해아동, 그 법정대리인, 변호사의 청구가 필요하다. 보육원이나 아보전은 청구 권한이 없다. 피해아동에게는 국선변호사가 있었지만, 보호명령 연장 청구는 하지 않았다. 5살 아이가 직접 자신의 법정대리인이나 변호사에 요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누구도 아이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았다.

인천가정법원은 김 의원이 “보호명령 기간 연장을 직권으로 진행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질의했더니 법원은 “계부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위반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아보전으로부터도 특이사항이나 아동학대 재발생 위험성에 관한 의견이 제출된 바 없었다”라고 답했다. 인천 아보전이 이씨의 접근금지 위반행위의 위법 여부를 법원에 문의했지만, 법원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 의원은 “만약 이때 판사직접 보호명령 기간을 연장했다면, 국선변호사가 기간 연장 청구만 했다면, 그도 아니면 아보전이나 보육원이 직접 기간 연장 청구를 할 수만 있었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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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의붓아들의 손발을 묶고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A씨(26)가 7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미추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A씨는 2017년 10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유기·방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4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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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가 피해아동의 나이 등을 고려해 신중한 판단만 했다면



인천아보전이 미추홀구에 제출한 ‘피해아동 가정복귀 의견서’에는 아동의 의사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아동 상담 시, 친모에 대한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보고싶어 하고 만나는 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임. 계부에 대한 질문에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보고싶다고 표현하며 선물을 사주기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임” “피해아동이 친모, 계부와 만났을 때 거부감 없이 인사하며 계부에게 안기는 모습 관찰됨. 피해아동은 외출 후 보육원 귀원 시 보호자들과 떨어지기를 거부하며 울었고, 계부가 먼 곳으로 일을 하러 가야 돼서 오늘 함께 집으로 가지 못한다고 설명하며 달래고 다음 만남을 약속함” 김 의원은 “피해아동의 연령은 만5세. 사리분별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가해자인 이씨와 함께 살았던 기간은 만2~3세 때인 2016~2017년 몇 개월이 전부다. 이 정도 경험을 바탕으로 만 5세 아이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해서 이것을 피해아동의 진의로 볼 수 있겠느냐”며 “가족 외출을 다녀온 후 피해아동이 떨어지기를 거부하며 울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이는 어쩌면 희망 같은 걸 느꼈는지 모른다. 반면에 계부에 대한 질문에 머뭇거린 피해아동의 행동은 지나치게 간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에 대한 판단에서도 전문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천아보전은 이씨에 대해 대면상담 12회, 심리치료-부모교육 8회 등 진행 중으로 매우 협조적이며, 이씨와 친모가 양육중인 피해아동의 동생의 양육에 있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아보전은 이씨가 ‘상담치료 및 교육, 월 1회 가정방문, 가정귀가 후 최소 3개월 사후관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가정복귀를 결정했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가정 폭력과 3차례의 아동학대 신고가 발생한 가정이며 가해자 이씨는 집행유예 중이었다. 만약 이러한 점을 감안했다면,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피해아동 퇴소절차만 제대로 밟았어도



결국 피해아동은 2019년 8월 30일 보육원을 퇴소해 집으로 돌아간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이 보호시설에서 퇴소하기 위해서는 친권자나 후견인이 지자체에 가정복귀 신청을 하고, 지자체가 해당 시설 등으로부터 의견서를 받아 최종결정한다. 지자체는 그 과정에서 아동복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8월 13일 친모가 가정복귀를 신청하자, 21일 인천아보전은 ‘피해아동 가정복귀 의견서’를 미추홀구에 제출한다. 인천아보전은 의견서에 ‘계부가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이 있어 재학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 향후 상담 등을 약속했다’는 점을 들면서 시설 퇴소를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씨가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했고, 보육원 관계자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했다는 사실은 빠져있다. 재학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피해아동의 입장보다는 이씨의 태도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28일 미추홀구는 인천아보전이 제출한 의견서를 근거로 퇴소를 최종결정했다. 법률상 정해져있는 아동복지심의위원회는 개최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만약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열렸다면, 전문가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퇴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했다면 이렇게 일사천리로 퇴소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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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를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 굿네이버스 황윤지 작가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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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후 26일만에 숨진 아이...사후관리만 제대로 했다면



김 의원은 “아이는 귀가 뒤 겨우 26일만에 숨졌다. 아보전이 사후 관리만 철저히 했으면 아이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화 했는데 연락 안 됐다고한다. 아이를 데려가며 약속했던 부모교육이나 심리치료도 받지 않았다. 아보전이 적극 조치했다면 아이는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만5세 아이가 계부에게 맞아서 사망하기까지 법원도, 경찰도, 지자체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사건의 공범인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수차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을 겪으면서 법을 바꾸고 시스템을 갖춘다고 했건만, 현장에서는 법도,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뉴욕의 경우 아동이 사망하면 수사과정과 별개로 아동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 미래의 아동사망사건을 막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끔찍한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사건부터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스더ㆍ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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