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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갓길 인부 3명, 날아온 1t 트럭에···이번에도 졸음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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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중부내륙고속도로서 졸음운전 사고

21t 대형화물차가 1t트럭 받자 트럭 붕 떠

갓길 옆에서 풀 베던 인부 3명 덮쳐 사망

작별인사도 못한 유족 "허망하다" 울분

중앙일보

21일 오전 경북 상주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21t 화물차가 1t 화물차 2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화물차들이 튕겨나가 주변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 3명을 덮쳤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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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이제 눈이 침침하다길래 작업 나가지 말라 했는데…. 졸음운전 사고라니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어디있습니까.”

21일 오후 5시쯤 경북 김천시의 한 장례식장.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임모(47)씨가 헐레벌떡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장례식장에서 대기하던 그의 고모와 고모부는 서울에서 달려온 임씨를 보자마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경찰이 유족임을 확인하고 임씨에게 사고 현장 사진을 건네자, 임씨는 차마 사진을 보지 못한 채 고개만 떨궜다.

임씨는“아버지는 김천에서 벼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으로 고속도로 삭초(풀 베기) 작업을 30여 년간 해왔다”며“어머니가 2006년 돌아가시고 적적하신지 만류했지만 계속하셨다”고 했다. 이어 ”최근엔 눈이 침침하다고 해서 그만두라 했는데도 아는 분들과 취미 삼아 하니 괜찮다고 하셨는데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임씨의 아버지(73)는 이날 오전 11시58분쯤 경북 상주시 중부내륙고속도로 136.6㎞ 지점 갓길 옆 경사면에서 동료들과 풀을 베는 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삭초 및 잡목 제거 작업을 조경개발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날 작업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철수하던 중 임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3명이 갑자기 날라온 1t트럭에 치였다.

경찰·한국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이날 21t 대형 화물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다 갓길에 세워진 ‘작업 중’표시를 단 1t 트럭(싸인카)을 보지 못하고 들이박았다. 인명 사고는 대형 화물차에 후미를 받힌 1t트럭이 바로 앞에 세워진 또다른 작업차량(1t 트럭)과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트럭은 충격으로 순간 붕 떠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오른 편에서 삭초 작업 중이던 임씨의 아버지와 김모(53)씨, 이모(72)씨 등 인부 3명을 덮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다발성 골절 등으로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다른 인부 1명은 당시 비교적 떨어진 곳에서 작업 중이어서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21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 방향 136.6k 지점에서 1t 화물트럭 2대와 21t 트럭이 잇따라 추돌했다. 이 사고로 고속도로 주변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3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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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찾은 사고 현장은 참담했다. 21t트럭이 친 1t트럭의 뒷부분은 찌그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작업 중’이란 간판만 트럭 후미에 간신히 달려 있었다. 트럭 바퀴도 떨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고속도로 펜스와 ‘구간단속 중’ 표지판은 사고 당시 충격에 휘어진 상태였다. 곳곳엔 사고의 충격으로 부서진 돌들이 보였고 인부들이 풀을 벤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21t 대형화물차 운전자는 경찰에 “순간 졸았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조사한 결과 음주 운전은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졸음 운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임씨는 “조금만 쉬었다 가시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씨의 고모는 “성실했던 내 남동생이 말도 안 되는 사고로 허망하게 갔다”며 가슴을 쳤다.

경찰은 고속도로 삭초 작업시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상주경찰서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싸인카의 정확한 위치와 사고 경위를 확인한 뒤 작업시 안전규정 준수 여부를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주=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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