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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세 방에 국내 최대 배추밭이 쑥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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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배추밭. 예년 같으면 시퍼런 배춧잎이 무성하겠지만, 올해는 누런 황토로 뒤덮여 있었다. 잡초처럼 듬성듬성 난 배추도 발로 톡 건드리자 옆으로 푹 쓰러졌다. 뿌리가 썩어 배춧잎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는 말라 비틀어진 배추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산이농협 관계자는 "이맘때가 되면 밭 위에 축구공만 한 배추가 가득해 걸어 다니기 힘들어야 정상"이라며 "올해는 배추가 전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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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 태풍 피해를 당한 배추밭 곳곳은 마치 수확을 끝낸 밭처럼 누런 흙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추도 뿌리 부분이 썩어 발로 툭 건드리면 힘없이 쓰러졌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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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면이 속한 해남군은 전국에 유통되는 가을 배추의 30%, 겨울 배추의 70~80%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 배추 산지 중 하나다. 보통 10월 말부터 수확하는 가을 배추는 김장용, 12월 중순에 수확하는 겨울 배추는 대량으로 생산하는 포장 김치용으로 주로 쓰인다. 올해는 가을 배추가 한창 자라고 겨울 배추가 뿌리를 내리는 9월에 3개 태풍이 연이어 휩쓸고 지나가면서 배추밭이 초토화됐다. 1904년 이래 9월에 3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산이농협 김애수(59) 조합장은 "출하량이 예년의 30%에 불과하다"고 했다. 해남 배추 출하량이 급감하면서 최근 배추 도매가격이 지난해의 2배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겨울 김장철 배추 값이 더 오를 수밖에 없어서 역대 최악의 '김장 대란'이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배 뛴 배추 값… "김장 대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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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손질한 배추 1포기는 49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작년 이맘땐 3000원 안팎에 팔리던 것이다. 이 대형 마트 관계자는 "최근 배추 출하량이 급격히 줄어든 데다, 앞으로도 배추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 김치 제조업체들이 미리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소매가격이 더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8일 전국 배추 평균 도매가격(상품·10㎏)은 1만6000원으로 지난해 10월 18일(8113원)과 비교해 배 정도로 치솟았다.

산이농협의 경우 올해 배추 출하량이 지난해의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이농협 박광희 상무는 "농민들 입장에선 절임 배추가 부가가치가 높은데, 뿌리가 썩어 배추 생육이 나빠지면서 절임 배추를 위해 필요한 3㎏ 이상의 배추를 수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배추 값뿐 아니라 전남 지역 배추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산이농협 김애수 조합장은 "40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는데 이렇게 큰 피해를 본 건 처음"이라며 "내가 갖고 있는 배추밭 3만평(약 10만㎡)에서 배추 한 포기도 못 건질 거란 결론을 내리고 올해 농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지난 8일 산이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들의 생계가 곤란한 극한 상황이 됐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해남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향후 배추 값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한 대형 마트 채소팀장은 "전남 이외 경북과 충청, 경기 쪽 작황은 예년과 비슷하다"며 "지난해 김장철 마트에서 배추 1포기에 1500~2000원 정도에 팔았는데, 올해는 2500~3000원 정도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추 값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남 지역 배추밭 상당수는 태풍이 쏟아부은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펄처럼 변했다. 이제 막 심은 겨울 배추마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이농협 박광희 상무는 "12월이 되면 배추 값은 지금보다 무조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추 값 폭등세가 이 정도에 그치는 것은 대관령, 충청, 경기 등 다른 주요 배추 재배 지역의 작황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마늘·생강 값은 안정

배추 값이 급등하고 있지만, 고춧가루와 생강, 마늘 등 양념 재료 채소 값이 안정세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18일 고춧가루(소매·상품·1㎏)의 가격은 2만8089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3만2612원)보다 약 14% 떨어졌다. 생강, 마늘 등의 가격도 지난해에 비해 하락했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10만원으로 김장을 한다면 양념 값이 6만~7만원을 차지한다"며 "배추 값은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양념 값이 안정돼 소비자 부담이 그렇게 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날씨도 변수다. 포장 김치를 생산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배추 값이 폭등하지 않으려면, 김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1월 말 이전에 조기 한파로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한파를 피한다면, 비축해놓은 배추가 있어서 공급 차질이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석남준 기자(nam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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