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라디오에서 책 좀 들으실래요…책 낭독 프로그램의 매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MBC ‘책을 듣다’·EBS ‘아이돌이 만난 문학’

설현·배철수 등 유명인들이 책 한권 낭독

“청소년에 미칠 영향력으로 책 읽는 문화 만들고파”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빠가 세상을 뜨신 지 1년 만에 엄마도 돌아가셨다./ 내 나이 다섯살 때였다./ 친척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서 내가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열심히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페인트칠이 된 침대와 탁자 의자 따위를 나눠 가지면서 말이다.”

일요일 늦은 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한 구절이 스며든다. 잠들기 전 켜놓은 라디오에서 불쑥 다가온 목소리가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노래도 아니고 인터뷰도 아닌 책을 읽는 익숙한 목소리는 바로 설현이다.

라디오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책 낭독 프로그램인 <책을 듣다>(문화방송 표준에프엠)가 지난 5일부터 토·일 밤 9시25분마다 책을 펼친다. <문화방송>(MBC)은 “책 읽는 문화, 책 듣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연간기획”이라며 “1년간 100여권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디제이 겸 가수 배철수가 들려주는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시작으로, 배우 이엘이 <그 남자네 집>(박완서), 가수 산들이 <알퐁스 도데 단편선> 중 ‘별’을 읽어내려갔다. 산들은 라디오에서 “하늘의 별은 나오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다”고 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19일에는 배우 이연희가 <밑줄 긋는 남자>(카롤린 봉그랑), 20일에는 가수 정승환이 <끌림>(이병률), 26일에는 가수 유승우가 <고슴도치의 소원>(톤 텔레헨)을 들려준다.

책 읽는 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교육방송(EBS) 라디오>에서는 매주 일요일 자정부터 2시간 동안 아이돌이 문학을 읽어준다.(<아이돌이 만난 문학>) 지난 4월 청하가 김아정의 <환한 밤>을 낭독한 데 이어 하성운 <라면은 멋있다>(공선옥), 남우현 <영화처럼 세이셀>(공지희)로 이어졌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으로 행복한 12시> <음악이 흐르는 책방> <책 읽어 주는 라디오> 등 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에는 아이돌 등을 내세워 젊은층을 겨냥하는 전략이 눈에 띈다. 청소년 절반가량이 책을 안 읽거나 월 한 권 이하 독서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아이돌이 만난 문학>을 연출하는 강동걸 피디는 “아이돌의 말 한마디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들의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책을 듣다> 김나형 피디는 “친숙한 목소리로 듣는 책을 통해 청취자들이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발견하길 바랐다. 낭독자 중에 아이돌이 있지만 10대만이 아닌 2049 모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30분(<책을 듣다>), 2시간(<아이돌이 만난 문학>) 동안 책 한 권을 읽는다. <아이돌이 만난 문학>은 전체를 오롯이 훑고, <책을 듣다>는 낭독자들이 내용을 읽고 중간중간 요약 및 해설을 한 뒤 자신의 감정을 들려준다. 오디오북이 유행하고 팟캐스트로 책을 소개받는 시대에 짧은 시간 동안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는 형식이 주는 맛은 좋다.

젊은층을 겨냥한 만큼 책 선정도 개성이 넘친다. 흔히들 ‘한국문학 100선’류의 단편적인 구성을 하는데, 김나형 피디는 “2049 청취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다양한 장르, 여러 나라의 책을 다채롭게 선정한다”고 말했다. 누가 들려주느냐가 책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낭독자 선정도 까다롭다. 발성, 발음, 전달력, 감정 표현도 중요하지만 목소리의 색채와 느낌을 먼저 고려한다. 낭독자가 읽을 책을 정하는 과정도 세밀하다. 강동걸 피디는 “제작진이 낭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 주지만, 먼저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김나형 피디는 “<책을 듣다>에서 이엘이 직접 박완서의 <그 남자의 집>을 택했다”고 밝혔다.

방송 시간의 서너배가 걸리는 등 녹음 작업도 만만찮다. 연기하고 노래를 하는 ‘발성’이 중요한 직업이지만 낭독은 또 다른 세계다.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강동걸 피디는 “녹음하는 가수들도 긴 시간 쭉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설현, 옹성우 등은 책을 여러 번 읽어 오거나 끊어 읽기 등을 파악해 오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해 온다. 배우들에게도 마음을 다스리는 기회가 된다. 김나형 피디는 “정은채 배우는 녹음을 마친 뒤 책을 읽고 집중해서 녹음한 이 시간이 자신에게도 큰 위안이 됐다고 말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듣는 책의 매력으로 이들은 상상력을 꼽는다. 김나형 피디는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책은 눈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과 상상력을 불러온다. 낭독자의 목소리가 주는 고유한 느낌과 미세한 감정 변화, 장면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 어우러져 마음에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런 힘은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돌이 만난 문학>에서 하성운이 읽은 책은 방송 직후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 순위가 껑충 오르기도 했다.

저작권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소개를 못 하는 등 책을 들려주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나 반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작가가 거절해 소개하지 못한 책도 많다고 한다. <아이돌이 만난 문학>은 그래서 공식 누리집에서 다시듣기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책을 듣는 행위가 결국 책을 읽는 행위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강동걸 피디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