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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아들 장기로 7명을 살렸는데 '자식 판 잔인한 어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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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장기 기증 후진국 못 벗어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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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지난달 15일 중학교 3학년 임모(15)군이 세상을 떠나며 살린 사람들 숫자다. 임군은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임군 가족은 평소 주변에 베풀기를 좋아했던 아들의 뜻을 새겨 심장, 폐, 간, 췌장, 좌우 신장을 기증했다. 모두가 임군 가족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뇌사자는 한 해 평균 3000~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중 449명(2018년 기준)만 장기를 기증했다.

임군은 장기뿐 아니라 뼈, 혈관, 심장판막 등 인체 조직도 기증했다. 인체 조직은 기증자와 이식자의 조직형이 일치하지 않아도 기증할 수 있다. 또 1명의 기증으로 최대 100명의 생명까지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 기증에 동의한 유족들도 인체 조직 기증 앞에서는 망설인다. 신체를 훼손한다는 거부감이 장기보다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인체 조직 기증자 통계(88명)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달 26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장기, 인체 조직을 모두 기증한 임군 가족의 결정을 각 언론사에 알렸다. 보도를 통해 어려운 결정을 한 임군 가족의 자긍심을 높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나가고, 임군 가족은 생각지도 못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과연 본인의 선택이 맞느냐' '돈 받은 것 아니냐' 등의 비난이었다.

장기 기증 후진국, 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장기·조직 기증에 있어서만큼은 최하위다. 한 나라 인구가 100만명이라고 했을 때, 뇌사 장기 기증한 사람이 한국은 8.6명(2016년 기준). 같은 기간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5배(48명), 미국은 4배(33명) 더 많았다. '부모가 준 신체를 훼손하면 안 된다(신체발부 수지부모)'는 유교 사상이 강하게 자리 잡은 탓일까.

2011년 아들의 장기와 인체 조직을 모두 기증한 장모(75)씨는 "30대에 갑작스레 떠난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미가 돼 어떻게 잔인하게 그러느냐' '돈 받고 장기 판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날아들었다. 장씨는 "내가 나쁜 엄마일지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3년간 기증한 병원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나 잘한 거 맞나요?'라고 묻고 다녔다"고 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많은 유가족이 이런 시선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인식 변화를 위해 어린 학생들을 위한 캠페인을 하면 당장 부모들이 전화해 '왜 그런 걸 가르쳤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거의 유일한 현금 제공국

2010년 세계이식학회는 한국 보건복지부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뇌사 기증자 가족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통해 장기 기증 정책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위로금'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족에게 740만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기증자 수가 적은 인체 조직 기증은 180만원이 추가돼 920만원이 나갔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현금 지급은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훼손할 뿐 아니라 유가족의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고, 스스로 그 돈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권고에 따라 정부는 2018년 위로금을 없앴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름이 바뀌었을 뿐 금전성 정책이 여전히 유지된다고 본다. 위로금 대신 장제비 명목으로 장기 기증은 360만원, 인체 조직까지 기증하면 추가로 180만원의 지원금이 나가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장제비가 실비로 지원되거나 위탁해서 장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장례가 끝난 뒤 통장에 현금이 입금된다"며 "장제비 명목이라면 금액이 다 똑같아야지 기증자가 적은 인체 조직에 장제비를 더 주는 건 현금 유인성 정책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어떤 형태든 금전을 지급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자긍심 높여주는 방향으로

장씨가 위로를 받은 건 아들의 장기를 기증한 병원에서 이○○, 김○○ 등의 긴 명단을 본 후였다. 장기 이식 대기자 명단이었다.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2016년 3만286명에서 2017년 3만4187명, 2018년 3만7217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뇌사 기증자는 2016년 573명에서 2017년 515명, 지난해 449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그 명단을 보고 나서야 장씨는 아들이 한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알았다고 한다. 장기운동본부 김동엽 사무처장은 "결국에는 유족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이식인과의 서신 교류나 유가족 심리 상담, 추모 공원 등이 그 방안"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기증인과 이식인의 정보 교류가 금지돼 있다. 장기 매매 등 불미스러운 상황을 방지하고, 감정적 부담도 덜어주기 위해서다. 미국 등 대부분 장기 기증 선진국에서는 최소한의 교류를 허용한다. 19년 전 고1 아들의 장기 9개와 인체 조직을 기증한 강모(64)씨는 아직도 누가 기증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 강씨는 "대단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의 기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유가족에 대한 심리 상담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등에서는 최소 18개월간 심리 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유가족의 사후 관리를 맡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대부분 유가족의 심리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기 기증자 추모 공원 역시 건립 논의만 있을 뿐, 매년 미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증자 이름을 새긴 비석과 함께 국립 장기 기증자 추모공원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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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자에게 최고 예우해주는 美

2015년 9월, 미국 워싱턴주(州)에서 공부하던 이진원(가명)씨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씨 부부가 미국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딸은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딸의 심장 등 장기 7개와 각막을 기증했다. 장기센터로부터 받은 금전적인 혜택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씨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고 했다.

미 호텔 연합회에서는 호텔 숙박을 무료로 제공했다. 보험회사는 기증자 유가족이란 것을 알고 병원비를 대납해줬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시신을 이송하는 일은 보통 한 달 이상 걸린다. 이씨 부부는 일주일 만에 딸과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 공항 가는 길, 경찰차가 부부 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했다. 호위 차량은 부부를 별도의 출국 수속 없이 곧바로 비행기 앞까지 인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딸의 시신이 있는 관을 예우를 다해 포장하며 화물칸에 싣는 모습을 이씨가 직접 보게 했다. 이씨 부부는 비행기에도 가장 먼저 탑승했다. 자리에 앉자 승무원이 부부에게 다가왔다. "저도 자식이 있는데 얼마나 마음 아프십니까? 혹 불편하신 일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이씨 부부의 아픔을 미리 숙지하고 있었다.

정작 어려움은 인천공항에서 겪었다. 딸의 시신을 검역하고, 이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나자, 미국 장기센터에서 이씨의 한국 집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에 대한 간단한 인적 사항과 그가 쓴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후에도 센터는 여러 이식인의 감사 편지를 영어 원문과 함께 한국어 번역본으로 보내왔다. 2년이 지났을 때는 딸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딸의 추모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매일 기도합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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