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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설왕설래] 권력자의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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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백마 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보고 퍼뜩 뇌리에 스친 단어가 권력자의 교만(驕慢)이다. 교만의 교(驕)는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뤄져 있다. 말을 탄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말은 옛날에 값비싼 교통수단이자 가진 자의 상징이었다. 교만이 권력자를 포함한 가진 자에게 자주 발병하는 이유다.

교만은 매우 특이한 증상을 동반한다. 우선 아첨을 반긴다.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그런 사람을 발탁하는 코드 인사를 남발한다면 교만의 질병에 걸린 게 확실하다. 다음으로 비판과 지적을 외면한다. 자신이 옳다고 과신하기 때문에 상대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 비판에 귀를 막고 자주 독선에 빠지는 권력자가 있다면 이미 말기 중증 상태라고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반성을 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항상 남 탓으로 돌린다. 우리 사회에 흔히 나타나는 내로남불 현상도 교만에서 나온 증상이다.

교만은 무서운 증세를 동반하는 까닭에 종교에서도 극도로 경계한다. 기독교에선 신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로 꼽고, 불교에서는 자기 본성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로 여긴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춘추좌전’은 “교만으로 망하지 않는 자는 아직 없었다”고 일갈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만의 위험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그런 지도자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의 불의에는 침묵한다. 조국 사태를 부른 자기 책임에는 눈을 감고 검찰과 언론 탓만 한다.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도 가장 막강한 자신의 제왕적 권력에는 아무 말이 없다. 이런 내로남불은 최고 권좌에서 국민을 내려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7년 전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초등학생과 얘기할 땐 키가 120㎝로 줄어드는 사람이 좋다. 들꽃과 이야기하려고, 강아지와 이야기하려고 가끔은 키를 바닥까지 낮추는 사람이 좋다.”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면 대통령 스스로 교만의 말 등에서 내려와야 한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상식이 보인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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