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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아시아평화미래재단’ 추진 박철순 “징용 피해자의 ‘나 때문에 경제보복 당하나’ 말씀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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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피해자 지원 박철순 부위원장

경향신문

17일 경기 분당에서 만난 박철순 아시아평화미래재단(가칭) 부위원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부친은 남양군도서 생환…돌아가신 동료들 말씀 자주 하셔

피해 가족 위로·아시아 각국과 연대한 ‘평화구축 단체’ 될 것


박철순 아시아평화미래재단(가칭) 부위원장(53)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과 나누는 강제징용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 생각에 잠 못 이룬 채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 모습도 봤다. 언젠가는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고 다짐해왔다.

지난 7월 막연했던 ‘언젠가’의 시점을 정했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 삼으며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를 시작한 때다.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8월 “나 때문에 경제보복이 일어난 것 같아 괴롭다”는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박 부위원장은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바로 재단 건립 구상에 들어갔다. 생업을 병행하며 실무를 진행했다. 지난 16일 재단 설립 추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튿날 박 부위원장에게 아버지와 재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향신문

아버지 고 박종옥씨(작은 사진)는 1942년 두 살배기 큰아들과 부인을 둔 채 태평양 적도 부근 남양군도에 끌려갔다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생환했다. 박 부위원장은 아버지가 남양군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러 번 들었지만 기억이 어렴풋하다고 했다. 박 부위원장은 늦둥이 막내다.

2010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양군도에 끌려갔던 한국인 노동자는 최소 5000명이다.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에 주로 투입됐다. 이들 중 60%가 태평양전쟁 발발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박 부위원장은 “일제는 멀쩡한 가정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가정을 이룰 수 있던 많은 이의 기회를 박탈하기도 했다”며 “아버지는 운이 좋았다. 그 운이 아니었다면 나도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2011년부터 일제의 만행을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 일본의 변화와 아시아 평화에 관한 전략도 고민한다. 박 부위원장은 “독일이 반성하기 시작한 건 자신의 태도변화도 중요했지만,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유대인 사회, 국제기구 차원의 압력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아시아 지역은 경제발전 문제가 시급해서 그런지 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협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아시아 차원의 연대체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의 문제의식은 재단 목표로 이어졌다. 재단은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아시아 지역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베트남 등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 사람들도 지원할 예정이다. 박 부위원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평화단체의 정당성을 확보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단 출범 날짜는 미정이다. 재단을 후원으로 운영하려다 보니 돈이 문제다. 현재까지 121명이 기부출연, 자원봉사 등 명목으로 참여했다. 박 부위원장은 재단 설립을 위해 1억원을 출연했다. 설립을 주도하고도 부위원장 직책을 맡았다. 박 부위원장은 “위원장이신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평생 사회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열의와 노하우를 함께 갖췄다”면서 “이런 분이 대표가 되면 많은 분들이 재단의 진정성을 인정해줄 것 같았다. 나는 실무적인 일을 맡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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