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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집 다 물에 잠겨…‘추억’까지 침수된 일 주민들 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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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ㅣ태풍 ‘하기비스’ 피해지역 가보니

“둑 터지면서 물 1m80㎝까지 차올라

2층에서 새벽에 아이들과 버텨”

쓰레기장엔 침수 가재도구 실은 차 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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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전 일본 열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하루 1000㎜가 넘는 물폭탄을 뿌린 초대형 태풍이 물러간 수도권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 게쓰카 지역의 가을 하늘은 여전히 구름을 머금은 흐린 날씨였다.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온통 휩쓸고 지나간 이 지역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떠밀려 내려가거나 시뻘건 진흙탕에 잠겨버린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분주하게 꺼내거나 망연히 바라보며 낙담한 시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집 근처 시내 하천에서 둑이 터져 물이 범람할 것이라고는 이곳 주민 누구도 예기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지진이 아닌 ‘하천 범람 재난’ 앞에 주민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새벽에 1층이 물에 잠겨 아내와 2살, 0살 아이를 데리고 2층에 피난해 있었습니다. 비는 그친 상태여서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무서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어요.” 16일 게쓰카 지역에서 만난 지노(43)는 태풍 하기비스가 수도권을 강타했던 12일 밤부터 13일 새벽까지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층짜리 단독주택 앞에서 그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물에 젖은 물건들을 파란 천 위에 늘어놓고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12일 밤 9시쯤 되니까 비도 그쳐 집으로 돌아왔다”며 “처음에는 물이 발목 수준이었는데 비가 그치고 나서 오히려 물이 급격히 불어났다”고 말했다. 그가 집 앞 창고에 줄자로 물이 들어찼던 높이를 재보니 1m80㎝였다. 비가 그쳤는데 집이 1층까지 침수된 이유는 인근 댐에서 큰비로 불어난 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긴급 방류를 했고, 이후 인근 하천에서 둑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일본 곳곳에서 벌어졌다. 히가시마쓰야마시 하천 중에서도 도키가와 및 신에가와 2곳에서 둑이 터져, 이 지역에서 적어도 270채가 침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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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마쓰야마시로 가기 위해 도쿄 도심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30분가량 달려 다카사카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은 겉으로 봐서는 태풍의 흔적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역에서 1.5㎞ 정도 걸어 피해 지역인 게쓰카에 도착하자 풍경이 변했다. 집 앞에 천을 펼쳐 들고 물에 젖은 물건들을 꺼내놓고 정리하고 있는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많았다.

게쓰카에서 만난 남성은 “이 지역에 피해를 본 이들이 많아 서로 돕고 있다”며 “이불 같은 가재도구부터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없어져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게쓰카 지역은 역 주변과 달리 작은 개천이 관통하고 있었다. 16일에는 개천의 수위가 높지 않았지만 바로 옆 논에는 진흙밭이 펼쳐져 있었다. 당시 범람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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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는 히가시마쓰야마시가 임시로 침수 피해 가재도구를 버리는 곳으로 개방한 니시모토주쿠 쓰레기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침수된 가재도구를 실은 차량이 꼬리를 물며 들어가고 있었다. 서랍장과 이불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가전제품을 실은 트럭도 보였다. 쓰레기장 입구에서 차량 안내를 하고 있던 여성 직원은 “오후 4시까지 쓰레기를 받고 있는데 쉴 새가 없다”며 분주히 움직였다. 히가시마쓰야마시에 사는 70대 남성이 집 앞 소나무에 기어 올라가 겨우 물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연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태풍이 지나간 일본 열도는 땅 위에 사망자가 속속 드러나면서 최소 77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17일 오후 기준 피난소 생활을 하는 주민이 4천명이 넘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태풍 피해 지역 중 한곳인 미야기현 이구군 마루모리에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행사 중 하나인 ‘슈가온레쓰노기’(카퍼레이드)에 대해 “연기하는 방향으로 검토한다”고 밝혔다. 카퍼레이드는 다음달 10일에 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히가시마쓰야마/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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