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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포럼] 비토크라시(vet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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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국 사태는 광장민주주의라는 평소엔 쓰지 않던 용어를 등장시켰다. 서초동과 광화문 둘로 나뉜 민심은 극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광장을 직접민주주의라고 했다. 조 장관이 14일 전격 사퇴한 직후엔 "광장에서 국민이 보여준 민주적 역량과 참여 에너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광장은 서초동만인가, 광화문도 아우른 건가.

둘로 갈라진 광장에선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의 전조가 더 읽혔다. 광장민주주의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게 많았다.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 가득했다. 거부만 횡행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만든 비토크라시(vetocracy)가 떠올랐다. 오로지 거부만 하는 정치체제라고 해야 할까. 2013년 후쿠야마 교수가 이 말을 꺼낸 건 당시 미국 정치를 빗대기 위해서였다. 재임에 들어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공화당 때문에 번번이 입법과 정책이 좌절되자 그는 이렇게 불렀다.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대립이 가장 심했다. 결국 연방정부는 16일간 문을 닫았다. 후쿠야마 교수는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조국 사태 때 광장에도 비토크라시만 존재했다. 서초동과 광화문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비난만 퍼부었다. 다른 쪽의 주장에 들어볼 대목이 있는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귀를 닫고 눈을 감은 듯했다. 정치세력의 세몰이, 선동꾼들의 막말, 유튜버들의 의도적 왜곡 등이 더해져 자발적 참여와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진보의 아이콘 조국과 딸의 금수저 장학금 및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로 드러난 언행 불일치의 조국을 확인한 뒤 분노하고 실망하는 이가 늘었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해 인사청문회를 앞둔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대규모 압수수색의 칼을 뺀 검찰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분하는 이도 넘쳤다. 법무부 장관 조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을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는 교차된 생각을 갖는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서초동에서는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하나로 묶었다. 광화문에서는 조국 사퇴와 문 대통령 사과를 묶었다. 조국을 거부하면서 검찰 개혁을 원하는 이들이 설 땅은 광장엔 없었다. 광장은 한쪽만 옹호하는 극단적 지지층의 터전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비토크라시는 민주주의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오히려 위협한다. 한쪽에서 반대하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타협도 없다. 정치의 설 땅을 봉쇄한다. 광장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말살시켜선 안 된다.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하지 못하니 대리인에게 권한을 위임키로 한 게 대의민주주의다. 선출된 이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서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다.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의 판결문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한쪽에서는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보인다. 거부의 연장이다. 조국 사퇴와 함께 문 대통령 사과를 꺼낸 다른 진영에서는 이제 하야라는 말을 주저 없이 던진다. 이 역시 거부의 연장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거부하고 임기를 절반 이상 남겨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건 맹목적인 거부의 극치다.

비토크라시가 횡행하면 정치는 사라진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능 상태로 빠져든다. 개혁도 혁신도 불가능하다. 대안 없이 거부만 해서는 역사의 진보를 이뤄낼 수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려면 비토크라시를 밀어내야 한다. 그 칼자루는 '수백만 명'을 자임했던 광장 참여자들에게 쥐여 있다. 광장민주주의를 외치려거든 비토크라시부터 몰아내라.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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