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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자24시] 엄중한 수사가 가정폭력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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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

멜로 영화의 제목쯤으로 보이는 이 문구는 언론인들이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퓰리처상을 2015년 수상한, 한 언론사의 기획 취재기사 타이틀이다. 소규모 지역 신문사 '더 포스트 앤드 쿠리어(The Post and Courier)'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여성이 다른 주에 비해 남성에게 살해되는 비율이 높은 이유를 8개월간 파헤쳤다. 보도는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엄정하지 못한 수사 방식, 부족한 피해자 보호시설, 입법 미비 등 문제가 결합해 10여 년간 300명 넘는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가해자를 피해자와 1년 이상 떨어뜨리면 피해자가 살해당할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를 인용하며 수사기관이 더 엄격히 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총리와 여왕까지 나서 가정폭력 해결을 국가적 어젠다로 내건 영국에 최근 다녀왔다. 가정폭력이 가족이라는 끈끈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만큼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부담스러운 건 영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런던 경시청 소속 한 경찰관은 "당사자들이 고소를 취하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찰은 가정폭력 사건을 어느 강력 사건보다 엄중하게 다룬다. 매뉴얼에 명시된 20가지 질문을 통해 현장에서 위험도평가를 실시하고, 가정폭력 전문 형사가 현장 출동 경찰관의 사건 처리 전반을 철저히 감시한다.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 증거 수집을 위해 보디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처럼 사안을 무겁게 취급하는 이유를 영국 경찰은 '피해자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정 내에서 상습적으로 발생해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이 한 해 접수하는 가정폭력 신고는 20만건이 넘는다. 하지만 뚜렷한 폭력 증거나 흉기 등이 발견되지 않으면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를 체포하기 쉽지 않다. 과잉 수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어서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더 엄중하게 바뀌어야 할 때다.

[사회부 = 김유신 기자 tru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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