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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칼럼]임대주택의 배신, 우리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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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가 내려진 대형서점 앞. 노숙인들이 종이상자로 각자의 집을 만들어 잠을 청한다. 누구는 종이상자로 몸 주변을 바람막이처럼 둘렀고, 또 누구는 종이상자를 겹쳐 1인용 매트리스를 만들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서울 종각역에서 마주하는 모습이다.

경향신문

가까운 친구에게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음식점 창업에 실패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40평대 아파트까지 잃게 된 처지였다. 친구는 세 아이와 함께 살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며 자격 요건과 지원 내용을 물었다.

공공임대주택은 두 장면이 오묘하게 겹쳐지는 단어다. 거리를 떠도는 가난한 이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지 않는 걸까,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평범한 삶을 살다 벼랑 끝에 몰린 친구는 살 만한 집을 얻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경향신문은 공공임대주택을 주제로 창간기획을 연재 중이다. 기획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1989년 영구임대주택 도입과 함께 시작한 공공임대주택은 도심 재개발로 밀려났거나 스스로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였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주거복지 정책의 하나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발표하지만, 사실 세상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취재 중이라고 하면 반응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공공임대주택이 뭐냐”고 묻든가 “임대아파트가 생각보다 좋더라” 식의 의미 없는 맞장구다. 부동산만큼 안전한 투자처는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한국사회에서 시세차익과는 거리가 먼 공공임대주택은 다소 생경한 영역이며, 이들이 경험한 공공임대주택이라 봐야 깨끗하게 도색된 외관을 본 정도였다.

관심이 목소리가 되고 여론이 되며 힘이 되는 법이다. 반대로 무관심은 소외와 배제를 만들어낸다. 지난 30년간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이뤄졌지만, 정책 취지가 어떠한 것인지 국가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는지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급량은 부풀려졌고 세대를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은 빈곤 현실은 조명되지 않았다. 영구임대에 산다고 ‘영구’라고 놀림받았다면 지금은 다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섞일 기회조차 없어졌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목소리를 낼 여력이 없는 이들을 위한 정책이라 그랬을까. 실제 공급 물량이 당초 계획에 못 미쳐도 그만이다. 공공성보다 사업성을 따져 이름만 살짝 바꾼 임대주택을 내놔도 이렇다 할 반대 없이 추진된다. 반지하와 옥상, 고시원 등 이른바 ‘지·옥·고’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이 227만가구가 넘지만, 대출을 받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중산층에도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지를 받는 게 현실이다.

최근 역세권 청년주택을 두고 불거진 ‘5평’ 논란은 공공임대주택의 현실을 꼬집는다. 1인 가구라고 해도 5평은 생활하기 좁다는 의견에 “그나마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물론 더 좁은 곳에 사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들에게 할당된 몫만큼 더 어려운 저소득층에 돌아가는 물량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의 여론은 복지 차원에서도 필요한 적정한 주거면적과 더 나은 주거환경에 대한 논의 자체를 가로막는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임대 단지에 고가 수입차가 즐비하다며 일부 사례가 일반화되고, 임대주택은 지을수록 적자라는 시장경제 논리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 또한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주거복지 정책의 바로미터라고 한다. 그러나 한 주거복지 전문가는 한국사회의 공공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을 한데 몰아넣고 ‘도시의 섬’처럼 만들어 주택이지만 사회복지시설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성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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