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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문화와 삶]음악저작권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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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 작곡가가 독일음악저작권협회에 7만200개의 음악저작물 사용허가 신청서를 트럭으로 제출했다. 33초 분량의 그의 음악 ‘제품 간접 광고’(product placements)에 그 수많은 음악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요하네스 크라이들러라는 인물로, 그는 당시 디지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음악 개념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며 기존 관념과 충돌하는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던 차였다. 인용된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제품 간접 광고’도 그 일환이었다. 음악학자 신혜수의 표현처럼 이는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젊은 작곡가의 해프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기존 체제가 디지털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야기”했다. 그 작품을 과연 크라이들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인용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디지털 환경에서 한 음악의 정체성을 가르는 핵심요인은 무엇인지 등 이 33초의 소리더미는 음악에 관한 적지 않은 질문을 끌어냈다.

경향신문

이 논쟁적인 음악이 하필 저작권협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음악저작권은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제화되어 개별 사례에 실천적으로 적용되는 일종의 최종관문이다. 국내의 경우 음악저작물은 “음 또는 소리를 그 핵심요소로 하며 가락, 리듬, 화음 등을 요소로 하는 악곡”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가사와 즉흥연주 모두 그 개념에 포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 사례가 음악저작물로 인정받으려면 법령에 명시된 음악의 구성요소들에서 한 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독창성이 발견되어야 할 테다.

법으로 재단된 이 음악저작물의 개념은 일견 명료해 보이지만, 실제 창작의 현장에는 수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음악 현장에는 구전되며 조금씩 변형되어온 선율, 인용과 차용, 가락과 리듬과 화음의 틀은 같을지언정 연주·노래하는 이에 따라 음악이 상당히 달라지는 경우가 만연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창작자는 다른 음악의 일부를 가져와 그것을 조금씩 바꾸는 것으로 창작을 시작한다고도, 엄밀히 말해 완전한 1차 창작은 없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그런 광경을 보면 한 음악과 다른 음악이 명확히 구분된 영역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스펙트럼처럼 이어져 있는 듯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고군분투 끝에 다르게 들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저작권 문제를 전면적으로 맞닥뜨리는 이들도 있다. 기존 음악을 재료 삼아 ‘샘플 기반 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디제이들이다. 여러 음악을 가져와 그것을 낯선 방식으로 뒤섞고 그로부터 생경한 묘미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작업방식은 저작권법을 위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들의 음악은 동시대 음악문화의 특수한 조건을 발 빠르게 반영하는 흥미로운 사례들이지만, 매번 진정한 창작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세간의 인식뿐만이 아니다. 작업물을 음반으로 발매하거나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 올리려 할 때, 샘플 기반 음악들은 저작권 필터링 단계를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나아가 이것은 때로 예술활동증명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진다. 저작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공식화된 창작물’의 문제는 창작자가 행정적으로 예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악저작권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간단치 않다. 누군가에게 샘플 기반 음악은 새로울 것 없는 실제적 침해 사례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음악의 존재론적 형식을 바꿔놓는 새로운 형식 실험이다. 저작권은 저작물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축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샘플링 금지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거나 미미한 분량을 샘플링한 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등 관련 판결들도 조금씩 누적되며 저작권에 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이 음악저작권 문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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