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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홍영림의 아웃룩] 탄핵 前으로 유권자 성향 '유턴'… 진보 줄고 중도·보수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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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들어 진보층 37→28% 보수층 23→26% 중도층 40→46%

소득·일자리 악화, 조국 사태 등 진보 與圈에 실망감 반영

유권자 절반인 중도층은 '反文 정서' 높지만 야당도 비호감

조선일보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3년 전 탄핵 정국 이후 진보층이 급증하면서 보수층을 압도했던 이른바 '진보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층 규모가 작년 하반기부터 급속히 줄면서 최근 보수층과 비슷해졌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11월)을 앞두고 탄핵 정국 이전으로 유권자 이념 지형(地形)이 '유턴'한 것이다. "진보를 표방한 현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과 지난 두 달여간 나라를 뒤흔든 '조국 사태'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표현한 것처럼 오랜 기간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하지만 2016년 말 탄핵 정국은 이념 운동장을 아예 거꾸로 돌려놓았다. 이에 힘입어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50년, 100년 '장기 집권론'이 나올 정도로 '진보 우위 시대'는 순탄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예상보다 빨리 저물고 있다.

◇3년 만에 저무는 '진보 우위 시대'

한국갤럽은 정치 관련 조사를 할 때 '정치 성향이 보수·중도·진보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물어서 응답자가 스스로 판단한 주관적 이념 성향을 측정한다. 주관적 이념 성향은 대통령·정당 지지율에 비해선 변동 폭이 크지 않지만,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갤럽 조사에서는 본격적으로 탄핵 국면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6년 10월에 중도층(46%)이 가장 많았고 보수층(28%)과 진보층(26%)이 비슷했다(월평균 수치, 중도층에 이념 성향 '무응답자' 포함). 하지만 탄핵 충격파는 이념 지형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가결 직후인 2017년 1월에 진보층(37%)이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고, 중도층(36%)에 이어 보수층(27%)이 가장 적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5월에는 중도층(40%)이 다소 늘긴 했지만 진보층(37%)과 보수층(23%) 차이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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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10월 조사에선 현 정부 출범 때에 비해 중도층(40→46%)과 보수층(23→26%)은 늘어난 반면, 진보층(37→28%)이 줄면서 보수층과 비슷해졌다. 탄핵 정국 이전처럼 진보층과 보수층의 경쟁 체제로 되돌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갤럽 조사에서 현재 보수층은 최고치, 진보층은 최저치다. 다른 조사도 비슷했다. 지난달 코리아리서치 조사는 중도층(43%), 보수층(29%), 진보층(28%) 순이었다. 한국리서치 조사는 중도층(47%)에 이어 진보층(27%)과 보수층(26%)이 거의 같았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바뀐 게 없다'는 실망감이 커지면서 진보층이 중도층이나 보수층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 축소와 소득 분배 악화, 소통 부재 등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정부가 자초한 현상이란 것이다. 진보·좌파의 위선과 탐욕의 민낯이 드러난 조국 사태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조국 임명설이 나오기 이전인 지난 6월과 10월 갤럽 조사를 비교하면 진보층이 31%에서 28%로 줄었다. 진보 정치권에 대한 이미지 악화가 진보층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총선의 '수퍼 파워' 중도층

유권자의 정치 성향은 보수 또는 진보에서 곧바로 상대 진영으로 이동하기보다는 대부분 중도를 경유해서 이동한다고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진보층에서 이탈한 유권자도 보수층보다 중도층으로 더 많이 이동했다. 이렇게 볼 때 진보층을 떠난 중도층이 앞으로 보수층으로 옮겨갈지 아니면 진보층으로 되돌아갈지 여부가 내년 4월 총선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중도층이 많이 늘어난 수도권(39→47%)과 충청권(37→48%) 등 전통적인 중립 지역이 내년 총선에서도 뜨거운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여권(與圈)은 조국 사태가 불거지면서 확연해진 중도층의 민심 이반으로 부담이 커졌다.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지명(8월 9일) 직전인 8월 첫째 주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은 국정 운영을 '잘한다'(52%)가 '잘못한다'(41%)보다 높았다. 하지만 두 달 만인 10월 첫째 주 조사에선 '잘못한다'(53%)와 '잘한다'(42%)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조 장관 임명 강행뿐만 아니라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며 조국 이슈에 직접 뛰어든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국 지키기'에 나섰던 민주당도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절반(46%)이 민주당에 '호감이 안 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중도층이 야당에 마음을 준 것도 아니다. 중도층의 자유한국당 비호감도는 66%로 심각한 수준이다. 호감도는 23%에 그쳤다. 여전히 지리멸렬한 야당이 중도층의 '반문(反文) 정서'를 담을 그릇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이슈에 화력을 집중했던 야당은 조 장관 사퇴로 이슈가 소멸되는 분위기에서 지지율 반등 기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도층은 특정 정파에 기울어져 있지 않아서 정책과 후보 자질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유권자"라며 "중도층 표심(票心)은 어느 선거에서나 강력한 변수였고 내년 총선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여야(與野) 모두에 거리를 두고 있는 중도층이 유권자의 절반이다. 나머지는 보수층과 진보층이 반반으로 갈려있다. 지금 같아선 내년 총선에서도 끝까지 안갯속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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