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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서소문 포럼] 또 벤치클리어링 할 건가요 의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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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장관 사퇴 ‘정치협상회의’ 주목

선거법·공수처법·예산안 풀어야

안 되면 연말 국회 또 동물의 왕국

중앙일보

강민석 정치 에디터


정치인 A는 지금 상황을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에 비유했다. 한번은 서초동에서, 또 한 번은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장 대전’을. 벤치클리어링이 뭔가. 야구 경기에서 선수끼리 시비가 붙으면, 한쪽 벤치에서 우르르 그라운드로 뛰쳐나온다. 그러면 상대 쪽 벤치에서도 뛰쳐나와 뒤엉키면서 양쪽 벤치가 싹 비어있는 장면을 말한다.

그런데, 이게 야구 전술로는 유효하다. 세를 과시하면서 팀의 사기를 진작하고, 팀워크까지 다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라운드로 달려나가지 않고 벤치에 있는 선수는 이기적이라고 찍힌다. 그래서일까. A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면서도 “광장집회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물론 국민이 광장에 나오는 이유를 벤치클리어링이라고 한 A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깎아내릴 순 없다. 상황이 비정상적이었지, 광장에 나오는 국민이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어수선한 현실부터 수습해야 한다.

‘정치협상회의’가 떴다. 지난주 금요일 상견례를 마쳤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정당 대표 5명(이해찬·황교안 ·손학규·정동영· 심상정)이 멤버다. 도대체 정당 대표들이 협상으로 무슨 무슨 난제를 풀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황교안 대표가 상견례 자리에 불참해 더욱 김이 빠졌다.

하지만 이 회의체를 주목하지 않을 순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전격 사퇴하면서 더욱 그렇다. 정치협상회의는 일주일 전인 지난 7일 이해찬 대표가 운을 띄웠다. 이 대표가 운을 띄웠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뭔가 줄 게 있다는 뜻 아닐까. 마침 조국 장관이 물러났다. 사실 조 장관 사퇴가 어제 결심하고 오늘 결행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결심이야 조 장관이 했겠지만, 여권 내 숙의의 결과일 게 분명하다. 언제 어떻게 결정한 것이든, 결국은 이제는 ‘수습’ 쪽에 무게를 실은 흐름이다.

중앙일보

서소문포럼 10/15


정치협상 테이블에 오를 의제들은 막중하다. 일단 두 개의 촛불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해야 한다. 촛불의 절반은 ‘검찰 개혁’, 다른 절반은 ‘조국 사퇴’를 요구했다. 조 장관 거취가 일단락됐으나 이번엔 검찰 개혁(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이다. 검찰 개혁은 선거법 개정안(연동형 비례제)과 한 덩어리다.

각 당의 얘기를 종합하면 협상이 본격화할 경우, 새해 예산안도 패키지로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또 있다. 패스트트랙 당시 국회 충돌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 문제다. 한국당 의원 57명이 민주당에 고소·고발을 당해 지금 검찰 수사 대상이다. 한국당엔 손톱 밑 가시 이상이다. 국회 일각에서는 한국당 말고 다른 야당이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해 협상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에 고소·고발 취하를 부탁하면서 다른 현안과 ‘빅딜’을 추진한다는 시나리오다.

두 개의 촛불 중단 및 분열의 치유, 검찰 개혁 법안, 선거법 개정안, 새해 예산안, 패스트트랙 고소·고발문제…. 상차림이 무겁다. 물론 맨 마지막 항목은 시나리오다. 민주당이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그걸 빼더라도 사실 큰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황교안 대표를 뺀 5명이 모인 자리에선 1980년대 후반 ‘3김 정치’ 시절, 김윤환(민자)·김원기(평민)·최형우(민주) 원내총무 시절의 협상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들은 난국 중의 난국이었던 ‘5공 청산’ 정국의 해법을 마련했다. 그 주역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자주 하는 말이 “협상이라는 것은 주거니 받거니 해야지 자기 것만 챙기려고 해선 협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협상의 기술은 ‘거래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모든 난제에 내용까지 ‘합의’해야 반드시 성공일 수는 없다.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법안 등에 반대해온 한국당이 찬성으로 돌아서긴 어렵다. 다만, 언제 어떻게 처리한다는 ‘절차’나 ‘형식’에 대해서만 합의해도 대성공이다. 지금도 5공 청산 버금가는 난국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이나 검찰 개혁안 등은 정치 일정상 풀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이다.

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연말에 다시 우르르 국회 복도로 몰려나와 주먹질하고, 망치 동원하고, 드러눕고 밖에 더 있는가. 이런 게 바로 국회판 벤치클리어링이다. 툭하면 벤치클리어링을 일삼는 국회는 동물국회도 아니고, 식물국회도 아니다. 그냥 동물의 왕국일 뿐이다.

강민석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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